"마음수련 후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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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빨리 가자!” 하고, 오직 내가 필요한 그곳을 향해 힘차게 출동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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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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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천,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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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1일 (수) 17:14 판

개요

직장인편

엔지니어로서의 나의 견해

저는 서울에 사는 직장인입니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저녁 6시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물론 가끔 야근도 하구요 주말에는 주로 가족들과 혹은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외국어 공부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저는 마음수련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수련 명상을 한지 약 8년 정도 됐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데 빠진 거 아니야?

저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한 대기업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고 잘 믿지도 않는 성향의 사람이죠. 마음수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한 선배를 통해서였습니다. 학창시절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똑똑하고 멋있고 존경스러운 선배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휴학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선배의 모습과는 달리 그 동안 마음은 많이 힘들었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저 같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 선배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고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알고 보니 선배는 그 시기에 마음수련이라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 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았고 보다 집중적인 수련을 위해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로 준 것 이었죠. 그 당시엔 지금처럼 명상이라는 것이 널리 대중화 되지 않았던 시기라, 어떤 걸 하는지 저도 이해가 좀 부족했기 때문에 혹시 이상한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잠시 했었어요. 그런데 복학을 한 그 선배님을 보면서... 정말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왜냐하면 복학 후에 그 선배의 변한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가장 큰 차이는 정말 행복해보였다는 거예요.

뭐... 원래도 착하고 똑똑한 선배였지만, 조금은 예민하고 행복해보이지는 않았는데, 다시 만난 그 선배의 모습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매사에 늘 밝고 긍정적이고 남을 먼저 배려하고,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무슨 일을 하던지 먼저 솔선수범 하곤 했었죠. 뭐랄까... 그 나이 또래 대학생들보다 의식 수준이 훨씬 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다보면 당연히 어렵고 힘든 일도 겪는데, 그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참 침착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부럽고 존경스러웠어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날은 제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선배, 거기 뭐하는 곳 이예요?”

“음... 그냥 마음 버리는 곳이야.”

“마음 버리는 곳? 마음을 어떻게 버려요...?

그리고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그 동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본인도 오랫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경험과,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또 버리면서 깨달은 것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대한 부분이 참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걸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그 선배가 참 고마웠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음수련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철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곳

선배는 마음수련이 '마음 버리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 말도 맞지만 저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찬찬히, 그리고 덤덤하게 되돌아보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를 돌아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1과정부터 7과정까지 전 과정에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샅샅이 떠올려 보았습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다 보니 삶에 대한 후회도 있었고 깊은 뉘우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이라고는 모르던 제가 사소한 것에도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됐죠. 수련 방법은 글로 알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어쨌든 큰 틀은 '나를 돌아보는 것' 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련을 거듭할수록 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의 상당부분이 해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진짜 저도 돌아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다보니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본성을 찾는 곳

우주, 진리라는 종교적인 느낌의 용어 때문에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단어들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버려나가는 과정을 통해 발견되는 본성'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단어에 매이기보다는 그 뜻과 의미에 더 집중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찾고자 했던 노력은 고대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추구해왔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우주, 하늘, 본성 등을 일컫는 단어들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유학에서도 사람의 본래 모습을 우주라고 했고 방법을 통해 본성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요. 제가 경험해본 마음수련 명상은, 본성을 찾아 그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마음수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도 닦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는 '마음 전문 기관'이라는 느낌이 더 큽니다. 음... 적어도 제가 경험해본 마음수련은 이게 전부입니다.

나를 돌아보는 방법이 있는 곳. 본성을 찾을 수 있는 곳.

이름 그대로. 마음 수련.

저는 마음수련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던, 욕심과 집착이 아닌 순리대로 지금 이 순간에 맡은바 최선을 다해서 하고, 내 것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 대신 각자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배려하고,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 보다는 내 안의 가시 같은 마음들이 없는지 먼저 돌아보고 없애고,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 대신 다 함께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과 태도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 프랑스 철학자 에밀 사르티에 (Emil Chartier)는 이런 말을 했었죠. "당신이 단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만큼 융통성 있는 사고와 포용력이 중요하다는 거겠죠.

저도 이제 마음수련을 한지 8년째가 되네요. ^^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없지만 단 한 가지 알게 된 건, 마음도 가꾸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더 소홀해지기 쉬운 것도 마음이죠. 그리고 저는 젊은 나이에 마음수련을 통해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또 가꿀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 비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여유가 생기고 문제가 생겨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너는 좀 다른 것 같다, 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 비해 바뀌긴 바뀌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가족 중에 누군가가 마음수련에 너무 빠진 건 아닐까 고민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걱정입니다.

또 마음수련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하려니 고민이실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것이니 약간 걱정도 하셨지만, 무엇보다 제가 행복해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시고는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도 저와 함께 매일 같이 명상을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도 부모님 사이도 훨씬 좋아지셨고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몸도 건강해지셨다고 참 만족스러워 하십니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님과 관심사가 달라지다 보니 저절로 대화도 줄어들고 서먹해지기 마련인데, 저는 부모님과 같이 명상을 하면서 마음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제는 진짜 부모자식 관계를 넘어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이점이 저는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린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음수련원 에서 찾은, 트라우마 극복하는 비법!

소방관.png

장학수 소방관. 그가 하는 일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 사고 등 각종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출동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직업의 특성상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아야만 했다. 마음 빼기를 하며 비로소 그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장학수(46) 소방관.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각종 사고 현장에서 보게 되는 처참한 광경이에요. 제가 처음 죽음을 접했던 건 교통사고 현장이었죠. 중년 여성의 운구를 이송했었는데 뇌리에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2005년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고 본격적으로 응급구조 업무를 하면서 상황은 더했어요. 추락사, 자살, 교통사고 등 각종 사건 사고들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장면 장면이 진하게 각인이 되더라고요.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가위눌림도 당하고….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한 현장에 갔을 경우엔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르니까 참 많이 괴로웠죠.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굴뚝같았어요. 정말 이직을 하고 싶을 정도였죠.

그 무렵 우연히 마음수련에 대해 알게 됐어요. ‘진짜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거기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간절히 찾던 중이라 바로 논산 메인센터에 갔습니다.

처음엔 기억을 떠올려 버린다는 게 힘들데요. 특히 죽음과 관련된 사진을 버릴 때는 그 감정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면서 오기 반 간절함 반으로 버려나가 봤어요. 신기한 건 수련한 지 3일이 지났을 뿐인데,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든다는 거예요. 수면 장애가 있어서 잠 한번 자려면 한 시간 이상을 뒤척이면서 실랑이를 벌여야 했거든요. 자다가도 3~4번씩 깨니까 늘 피곤했는데, 잠을 푹 자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우선 출동에 대한 두려움들이 조금씩 사라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늘 회피하고 싶었던 현장에서 사건 사고를 담담하게 처리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찾으니까 하루에 10건 이상씩 사고 처리를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진정한 휴식은 마음에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소방관, 경찰관 등은 다른 직종에 비해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밝아 보여도 눌러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런 직종의 분들은 특히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어요.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한 번쯤 싹 리모델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힘든 마음들 털어내고, 무거운 기억들을 빼내고 나면 새롭게 편안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그냥 몸이 뛰어나가지, 어떤 번뇌도 생각도 없어요. “가자! 빨리 가자!” 하고, 오직 내가 필요한 그곳을 향해 힘차게 출동할 뿐입니다.

마음편

1. 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오세천,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내가 너를 보면 무섭다....."

초등학교 때였다. 육이오 전쟁 중이었지만 소를 몰고 온 들판을 다니며 풀을 먹이고 들어오는 나에게 ,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종종 '내가 너를 보면 덜컥 겁이 난다'고 하셨다

어린아이가 그 힘든 농사일을 너무 악착같이 하니, 놀랍고 기특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아니 뱃속에 있을 때 지우려고 약까지 먹었는데, 끈질긴 생명력으로 태어난 아이가 누구도 안 하려 하는 힘든 일들을 하니, 안쓰럽고 미안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다.

9남매 중에 일곱 번째로 태어났기에, "내가 너를 지우려고 약을 먹었었다'는 말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잠재의식 깊이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자리 잡혀서였을까. 생존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커서였을까.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니 열심히 살아졌다.

삶의 의미 - 내가 사는 것인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인가 -


우리 집은 집터만 400평이 넘는, 여러 소작농까지 둔 부유한 농가였다. 해방 후 바로 내가 8세 때 사회주의가 들어오면서 토지개혁이 일어나 소작농지를 다 분배해야 했지만 우리가 직접 짓는 땅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 일본 메이지대에서 유학을 할 정도로 식자였던 아버지, 부유한 농가에서 귀하게 자란 형과 누나들은 농사일을 힘들어했다.

그 많은 일들을 힘들다는 생각도 없이 한 것은 나였다. 아직 어리니 일을 안 한들 뭐라 할 사람도 없었건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여졌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2~3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가서 종을 치고,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 학교에 가고, 학교에 다녀와서 또 일을 했다.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것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내가 손대는 일은 이상하게 다 잘되고, 내가 하는 농사는 언제나 남들보다 몇 배의 수확을 거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육이오 사변으로 마을에 폭탄이 많이 떨어져 마을 곳곳이 폐허가 되고 고철들이 생겼다. 그게 돈이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고철이 보이면 새끼줄로 묶어 집으로 끌고 와서 마당 한쪽에 쌓아놓았다.

그것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서 큰 도움이 됐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당시 특수농작물이었던 담배농사를 지어 고수익을 냈고, 담배농사 이후에는 고구마농사로 전환하여 또 많은 수익을 올렸다. 건강하고 힘이 좋아서 그 무거운 고구마 자루를 혼자 거뜬히 수레에 옮겨 싣고 나가 가게에 팔기도 했다. 중학생이 뭘 알아서 그랬겠는가. 이렇게 하면 돈을 벌 거야 하는, 어떤 계산도 없이 그저 열심히 움직이고 나면 그것이 필요한 등록금이 되고 생활비가 된 것이다.

원하던 대학의 토목학과에도 무난히 들어가고, 그 어렵다는 기술사 시험에도 한번에 합격했다. 이후 건설공무원을 하면서 우수공무원으로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나이 서른에 꾸린 가정도 성공이었다. 중매로 만난 아내는 일본 문화복장학원에 유학 중인 미모의 재원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함께 1남 2녀를 키우면서 큰소리 한번 나는 일 없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아이들 역시 엇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다.


- 죽음의 경험이 심어준 삶의 지혜 -


한마디로 참 평탄한 삶이었다. 스스로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하고자 하는 일에 어떤 장애가 닥쳤다며 좌절한 적도 없으니, 돌아보면 참 신기하고도 이상한 내 인생이었다.

왜 그렇게 살아졌는지 이해된 것은, 나이 육십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면서였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라는 존재가 쌓아온 모든 마음을 버리게 하는 마음수련은, 나라는 이기적인 존재를 없어지게 함으로써 편안한 순리의 삶을 살게 하는 명상이었다.

잉태되면서부터 죽음의 공포를 겪어야 했던 생명. 어머니는 그 시대 시골에서 듣고 알았던 아기 지우는 독한 약초를 먹었지만 지워지지 않아, 또 다른 약초를 과하게 먹었다가 아기보다는 당신이 돌아가실 뻔했다고 했다. 갑작기 배가 심하게 아프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고, 뱃속의 아기가 요동을 쳐오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몇 차례나 계속돼 죽을 뻔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많이 후회했고,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고 했다. 뱃속의 태아에게도 그것은 단순한 죽음의 공포를 넘어 이미 죽음의 목전에 갔던 경험이었으리라..... 죽음에 대한 경험은 또 있었다. 여덟살 무렵 냇가의 물에 빠진 적이 있다. 헤엄도 못 치는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강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떠올랐다를 반복하면서 500 미터를 떠내려가다가 동네 형이 구해줘 살아났었다.

그렇게 죽음과 직면했던 경험은, 한순간 삶을 내려 놓게 하고, 삶이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잘나 사는 것이 아니라 순리에 의해 저절로 살아지는 것임을, 겸허하게 깨닫게 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일하며 학교에 다녔고, 집안의 대소사를 다 챙겼고, 50년 넘게 직접 선산을 관리했던 나다.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도 소소하게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설거지까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은 무조건 먼저 했다.

사람이라면 어찌 고생스럽고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어떻게 그렇게 힘들다, 하기 싫다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는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신기했는데, 그 이치가 마음수련을 만나면서 깨달아진 것이다.

성공 비결 - 모두가 하나되어 사는 비결, 자기 마음 버리기 -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순리의 삶이다.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이 내 뜻과 상관없이 저절로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저절로 사는 자체가 평화고 행복이다.

물이 돌을 만나면 피해 흐르고, 가다가 또 나무 둥치를 만나면 옆으로 흐르듯, 부지런히 움직이되 남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살면 저절로 성공하고 잘살게 된다. 아니, 그렇게 산다는 마음 없이 살아진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는 하나다, 마음을 모으자'라며 구호를 외치고 결의를 다지고는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르고 보니 그게 참 힘들다. 못 하나 박는 것도, 거울 하나 다는 것도, 이 사람은 이랬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저랬으면 좋겠다 하고 부딪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 말이다. 그것이 해결되는 비결은 딱 하나다. 마음을 비워 자기 마음이 없어지면 저절로 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를 존중하게 되고 하나가 되기에 서로 싸울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마음 비우기를 통해 우리 삶과 마음의 이치까지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 오세천 님은 1939년 경북 김천에서 9남매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부산대학교 토목학과 졸업 후 건설공무원으로 재직했으며 부지런함과 청렴결백을 인정받아 우수공무원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1969년 결혼,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마음수련을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님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마음수련 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우울증

2. 우울증 극복,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마리아 트레이시 /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주)

( 마리아 트레이시는 슬로바키아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으나,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힘들었고, 그 마음의 고통은 결혼 생활로도 해결되지 못했다지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마음수련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마리아 트레이시. 그녀의 솔직 담백한 마음 이야기입니다. )


- '미국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여...' 행복 찾아 떠난 미국행 -


나의 고향은 슬로바키아의 서쪽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마을로,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시시콜콜한 모르는 게 없는, 그런 곳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슬로바키아의 수도에 있는 한 미국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 시절 TV에서 미국 쇼를 많이 봤는데 그 속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었고 나는 뉴욕으로 가 어느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집안일을 해주는 대신 영어를 배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후 나는 외로워지기 시작했고 곧 우울증에 걸렸다.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겼으며 많은 곳을 가봤지만 그 어느 것도 행복하지 않았다. 식구들 생각을 자주 했고 많이 울었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남자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 생각하게 되었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해서 이전에 꿈꾸었던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되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 화가 나도, 슬퍼도, 행복해도 울고... 감정 조절 전혀 안돼 -


남편과 나는 라스베이거스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고 나는 더 우울해졌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약을 먹자 마치 내가 좀비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매우 집착을 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집에는 붙어 있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늘 울었다. 화가 나도, 슬퍼도, 행복해도 울었다. 감정을 전혀 조절할 수가 없었다. 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가 마음수련 책자를 보게 되었다. 그 책자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과 함께 있었고 표지에 '마음수련(Meditation life)'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책자를 집어들고 집에 가지고 왔다. 그전에는 명상 같은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왜 이 명상을 '마음수련'이라고 하는지, 마음 (Mind) 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책을 남편에게 보여주었고 우리는 함께 공개강좌에 참석했다.


- 슬픔, 외로움, 화, 우울증... 점차 사라지게 한 마음수련 -


그 결정이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일단 한 달만 해보기로 하고 별로 마음에 안 들면 안하기로 남편과 결정을 했는데, 두 달, 세 달, 그러다가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우리의 삶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 마음수련은 정말 기적이다. 내가 살면서 겪었던 온갖 종류의 슬픔, 외로움, 화, 어두운 느낌, 내 우울증도 포함해서, 점차 점차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어디에서나 나를 따라다니고 내 삶의 매순간을 조종했으나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없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 돈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 이런 것들이 사라졌다. 마음수련을 하기 전에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즐긴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어서 겉으로는 행복한 척,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척,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고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죽어 있었다. 마음수련은 나에게 영원한 행복과 평화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오랫동안 멀고 낯설게 느껴졌던 남편과 가족들에 대해서도 보다 잘 이해를 하게 되었고 좀 더 따뜻하고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해결한다.


- 내가 힘들 때 그랬듯이, 마음수련은 당신을 위해 있는 것 -


내 성격 중에 안 좋은 점 하나는 한 번 화가 나면 며칠씩 간다는 것이다. 남편과 싸우고 나면 며칠, 어떨 때는 일주일씩 말을 안 하곤 했는데 이 버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의 이런 면이 싫었지만 고치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은 싸우고 나면 해결법을 금방 알 수 있다. 내 잘못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가끔 남편이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지만, 나한텐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즘 나의 삶은 마치 꽃봉오리들이 만개한 것 같다. 정말 모든 사함들이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살면서 아주 힘든 순간이 있을 것이고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는지 모르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마음수련은, 내게 해주었듯이 당신을 위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

3. 처세술 책 백 권보다 나은 대인관계 노하우

  (장혜정 / 컴퓨터 프로그래머)

("혜정씨는 인기가 많아서 좋겠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 같애."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전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사람은 내가 노력을 해야만 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도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나로서는 놀라운 변화였다.)


- 부담스러운 숙제 같았던 인간관계 -


그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마음수련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남자친구며 여러 인간관계가 생각처럼 되지 않아 힘들 때 마음수련을 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20대 후반경에는 아예 그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회사생활 잘하는 방법, 상사한테 인정받는 방법 등등.... 그런 책들에서는 기술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할 땐 얼마 만에 한 번씩 맞장구를 쳐줘라, 생일을 기억해 놨다가 카드를 보내라 등등의 지침을 챙기기 위해 더 분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예전엔 사람들 사이엔 의무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라면, 선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시키다 보니 상대도 부담스러워했다. 누구와도 안전된 관계는 이어지질 않았고, 나는 조급했다. 인간관계란 내가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유지되는 부담스런 숙제 같았다.


- 인간관계 잘하는 방법, 그 열쇠를 찾다 -


수련을 하면서 내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요령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았다. 모든 인연은 다 순리대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인데, 모두 다 내 기준에 맞추려고 억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주위 사람들도 변화된 나에 대해 호감과 신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마음수련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 된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고,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내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안 하면 정말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을 못하고 산다.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려주기가 어렵다. 처세술 100권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일, 인간관계를 여는 간단한 열쇠 하나가 내 입장을 버리고 세상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를 버리면 누구에게나 맞는 만능 열쇠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