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비우기

Booboo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4월 18일 (일) 16:32 판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마음 비우기

흔히들 '마음을 비워라' 라는 말을 하고는 하지만 그 마음을 비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떻게 비우는 것일까? 명상 또한 마음을 비우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비우는 목적과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줄 것이다.

마음빼기 명상

1. 알기 쉬운 마음 빼기

사람의 마음이 형성되는 원리는 사진기의 원리와 같다. 사진기로 사물을 찍으면 사진이 남듯이 사람도 경험한 모든 것이 사진이 되어 마음속에 남는다. 사람은 눈,코,귀,입,온몸으로 경험한 것을 모두 사진 찍어 마음속에 저장한다. 예를 들어 꽃을 떠올린다고 해 보자. 그것은 실제 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저장된 사진이다. 어릴 적부터 보았던 가족들의 모습도 마음속에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다. 친구와 싸웠던 일도, 첫사랑의 추억도, 스트레스와 걱정, 힘들었던 순간들도 내 마음의 사진이다. 이 마음의 사진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평생 동안 이 마음 세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마음의 사진을 빼내어 버리는 방법이 마음수련에 있다. 마음수련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진을 하나하나 버려나간다. 허상의 마음사진을 버린 만큼 마음은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 스트레스와 불안,걱정 없는 행복한 마음이 된다.

2. 마음의 원리

'마음 빼기' 방법은 단순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다른 명상과는 달리 쌓아온 마음을 완전히 버려 나의 본래마음이 되어 살게 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가능하다. 그 원리는 이러하다. 우리가 본래인 우주를 무한대 허공이라고 생각해 보자. 별도, 태양도, 달도, 지구도, 사람도, 모두가 무한대 우주 허공에서 나왔다. 우주 만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본래 우주를 '본바닥'이라고 하자. 본바닥인 원래 우주는 별이 있기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또한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대로 있는 영원 불변한 존재이다. 사람의 본성 또한 무한하고 영원한 본래 우주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본래의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사진처럼 찍어서 자기 마음 속에 담아두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사진세계는 실제와 너무나 똑같이 겹쳐져 있어서 우리는 자신들이 실제 세계에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착각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실제 세상이 아니고 자기 마음세상 속이다. 나의 마음세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마음이기 때문에 버릴 수 있다. 진짜라면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수련에는 자기 마음세상에서 벗어나 본래의 우주마음이 되게 하는 정확한 방법이 있다. 허상의 마음세계에서 살아왔던 나와 별,달,태양,우주마저도 다 지우면 본래의 마음만 남아 내 마음은 우주가 된다. 우주마음은 가장 크고 가장 높고 가장 넓고 가장 낮아 일체의 걸림이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순리의 마음이다. 우주마음에서 다시 나서 사는 것이 우주가 되어 사는 삶이고 완성이다. 지금은 빼기의 시대이며 완성의 시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 빼기를 하여 완성을 이루고 있다.

마음비우기 좋은 글

자존심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 비우기

물은 최고의 지혜를 인간에게 알려 준다고 한다. 도덕경에서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해를 끼치지 않는다라고 했다.

'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기꺼이 모이니 도에 가장 가깝다. 물을 닮은 군자(=성인)는 머물 곳을 잘 고르고, 마음은 그윽하게 유지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어질고, 말에는 믿음이 있으며, 다스리되 질서가 있고, 일을 할 때에는 솜씨있게 잘 하며, 때에 알맞게 행동한다. 전혀 다투지 않으니 책잡힐 일도 없다. - 도덕경'

물처럼 이롭게 자기 일을 솜씨 있게 잘 하고, 때에 알맞게 행동하는 지혜를 배운다. 다투지 않으니 순리이고, 책잡힐 일도 없다. 인이 없으니 과도 없는 것이다. 물과 같은 처신은 나의 삶의 기준점이다. 명상은 물과 닮아있다. 마음없이 살기 위해 명상은 필수적이고 물과 같은 마음으로 살기 위해 명상은 좋은 것이다.사람이 물처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얄팍한 자존심이다. 사실 마음공부를 하면, 자존심을 놓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행동이다. 마음이 큰 자만할 수 있다고도 한다. 자존심이란 자기를 지키는 것인데, 허상인 나를 지키기 때문에 이기적인 것이다. 한 발짝 뒤에서 보면, 자존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나에게 허무함, 우울감, 열등감만 안겨주는 부정덩어리이다. 하지만, 순리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 스스로 서서히 자멸한다.

물은 멀리 퍼져 만물에 생명을 주고,

낮은 곳에 머무니 처세의 본보기가 되고,

군자의 지혜처럼 깊이를 알 수 없고,

심연을 향해 거침없이 내닫는 용맹함을 보인다.

작은 틈에도 스미니 세심한 통찰에 비견되고,

스스로 더럽히지 않았으나 탁류라 배척당해도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항상 수평을 이루어

군자의 바른 마음가짐을 떠올리게 한다.

-설원

깨달은 노자와 공자는 물 예찬론자 일 수밖에 없는 것이, 물은 마음이 없기에 마음 없는 우주 마음을 그대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본래 우주와 닮아 있다. 살아있는 영원불변한 우주의 무한한 빛과 에너지의 생명력은 물에서 느낄 수 있다. 마음으로 보라. 마음으로 느껴라. 마음으로 즐겨라. 마음속에 답이 있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수련 명상으로 마음 비우기를 한다. 마음을 비우면 물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맑고 투명하고 밝고 시원해지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마음 관리이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수련이 정말 중요한 일이다. 마음은 과학과 닮아있다. 비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아주 이성적이다. 인간이 비현실적인 동물일 뿐이다. 마음은 우주요, 마음은 창조의 근본이다. "마음먹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부정적인 마음 버리기의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살펴야 할 일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비움 "속이 가득 찼다고 소리를 내는 게 아닙니다. 악기는 비어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겁니다." 연습 중이던 지인은 첼로의 활을 들고 소리를 튕겨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첼로의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텅빈 속을 보여 주었다. "한 번 비워 보세요. 내면에서 울리는 자기의 외침을 듣게 됩니다."

- 전경일의《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중에서 -

악기가 소리를 냄에는

비움의 미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움은 곧 울림이요, 자기 소리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야 자기 소리가 납니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고, 비워야 비로소 내면의 자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운 사람들의 체험담

1. 진짜 행복이 주는 진짜 웃음

<이오남 교사.충청남도 홍성군 구항초등학교>

"선생님, 왜 가짜로 웃어요?"

교실에서 인터폰을 받는 나를 보며 우리 반 남자 아이가 한 말이다.

"아,상냥하게 전화를 받아야지"라고 대꾸는 하였지만 머리통을 한 대 맞은 듯 정신를 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창피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직 경력 10년, 나름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몸바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들려온 말은 바로 '내 웃음이 가짜'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순수한 농촌 꼬맹이의 눈에 나의 가식이 보였고 그 말은 나를 산산이 부서뜨리기에 충분했다.

- 아이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던 나를 향한 일침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서며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늘 바쁘고 분주했다. 특히 방학 때면 거의 빠짐없이 새로운 연수를 찾아다녔다. 몇 년씩 전문가와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사물놀이,그림,퀼트와 재봉틀,천연염색을 배우기도 하였다. 한순간 사라져버릴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웃음을 담고자 카메라 연수도 따라 다녔었다. 생생하게 익혀온 것들은 학급운영에 녹아나게 하였다. 사물놀이를 연주하고, 미술 작품을 완성하고, 천연염색 주머니를 만들고... 그러한 활동은 학급문집으로 엮어졌고, 사진과 동영상은 비디오테이프와 CD에 담겨 아이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되뇌게 되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 아이들이 비교되지 않는 자신감을 갖게 할까?'

'어떻게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과 일치시킬 수 있게 해줄까?'

'스스로 하려는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방법은 없을까?'

'싫어요, 못해요,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가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겪게 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헤매다 지칠 즈음, 나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 진짜로 웃는다는 건 뭘까?

나는 왜 가식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 나는 항상 나에 대해 '좋은 사람, 긍정적이고 따스한 사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사람' 이라는 허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의 내가 아닌 '바라는 나'일 뿐인데 그게 '현재의 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내가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나로 보이려고만 하다 보니 그렇게 힘들 수 밖에. 당시 내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아이고,죽겠네'였다. 힘들어 죽겠고 배불러 죽겠고 어려워 죽겠고 추워 죽겠고 바빠 죽겠고 졸려 죽겠고... 늘 '죽겠네'라는 말과 한숨을 달고 사는 나를 보며 엄마는 뭐라 하셨지만 그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죽어 있었다. 정말 살기 어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나 스스로 파놓은 '나'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나 스스로를 세상에 편하게 열지 못하고 철저하게 숨기느라 쌓아온 마음의 벽들, 그리고 변화와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오직 앞만 보며 끊임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나의 발걸음. 나만의 완벽한 성에 갇힌 나, 사방팔방 벽으로 둘러쳐져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했던 나. 이젠 포기하고 싶었다.

바로 그때 만난 것이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였다. 명상을 하며 나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너무나도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삶은 고스란히 나만의 마음세계를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나는, 언제나 나만 옳았기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또 그렇게 하는 나 자신도 미워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내 마음엔 '미움'이 많았다. 태어날 때부터 머슴애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나에겐 빨간 원피스도 노란 구두도 안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한번은 꽃무늬가 있고 허리 뒤에 리본을 매는 빨간 원피스를 추석빔으로 엄마가 사주셨는데 입어보니 정말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 옷은 바로 동생에게 주어졌는데 동생에게는 내가 봐도 정말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한 '미운 나.' 내 몸이 커짐과 동시에 내 마음 안의 '미운 나' 도 똑같이 커지고 있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미운 나를 쉽게 벗어던질 수는 없었다. 내 마음 속에 '미운 나'의 허상을 가지고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실제 버리는 순간 그 '미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 '미운 나'를 벗어던지다

그렇게 꿈꾸었던 '좋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지 결코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없었다. 내 마음에 미움의 싹이 하나라도 있으면 아이들을 미워하게 되고, 내 마음에 짜증의 씨앗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나는 단지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다 될 줄 알았다. 꾹 참고 인내하면 잘 될 줄 알았다. 또한 내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다른 동료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벽을 쳐가면서 나는 고슴도치처럼 내 곁에 어느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외로웠다. 혼자였다. 그래도 그 길이 내 길이라 위로하며 나는 그렇게 혼자만의 마음세계를 점점 더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이젠 안다. 마음이 실제라는 것.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마음을 쓰게 되고 그 결과가 그대로 있다는 것.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부정의 마음을 먹으면 부정의 결과가 있고, 긍정의 마음을 먹으면 긍정의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명상을 하기 전 나는 너무나 부정적이었다. 힘든 마음, 안된다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후회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믿지 못하는 마음... 그런 부정의 마음으로는 내 삶을 끌고 가는 것조차도 힘든데, 어떻게 아이들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너무나 잘못 살아왔던 내 삶을 버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눈물은 후회와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가짜인 나에게서 벗어난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고, 참된 삶으로의 걸음이라는 기쁨의 눈물이었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에 찬 감동의 눈물이었다.

마음수련은 내가 살아오면서 구축해놓은 나만의 마음세계를 시원하고 통쾌하게 부서뜨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외롭고 어둡고 힘들었던 내 마음세계에서 벗어나 세상과 함께 눈빛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웃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행복한 척하느라 애썼는데 이젠 억지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행복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진짜 웃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