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후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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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돈이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고철이 보이면 새끼줄로 묶어
그게 돈이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고철이 보이면 새끼줄로 묶어
집으로 끌고 와서 마당 한쪽에 쌓아놓았다.
집으로 끌고 와서 마당 한쪽에 쌓아놓았다.
그것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서 큰 도움이 됐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당시 특수농작물이었던 담배농사를 지어 고수익을 냈고,
담배농사 이후에는 고구마농사로 전환하여 또 많은 수익을 올렸다.
건강하고 힘이 좋아서 그 무거운 고구마 자루를 혼자 거뜬히 수레에 옮겨 싣고 나가 가게에 팔기도 했다.

2019년 3월 6일 (수) 11:01 판


1. 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오세천,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내가 너를 보면 무섭다....."

초등학교 때였다. 육이오 전쟁 중이었지만 소를 몰고 온 들판을 다니며 풀을 먹이고 들어오는 나에게 ,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종종 '내가 너를 보면 덜컥 겁이 난다'고 하셨다

어린아이가 그 힘든 농사일을 너무 악착같이 하니, 놀랍고 기특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아니 뱃속에 있을 때 지우려고 약까지 먹었는데, 끈질긴 생명력으로 태어난 아이가 누구도 안 하려 하는 힘든 일들을 하니, 안쓰럽고 미안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다.

9남매 중에 일곱 번째로 태어났기에, "내가 너를 지우려고 약을 먹었었다'는 말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잠재의식 깊이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자리 잡혀서였을까. 생존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커서였을까.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니 열심히 살아졌다.


- 내가 사는 것인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인가 -

우리 집은 집터만 400평이 넘는, 여러 소작농까지 둔 부유한 농가였다. 해방 후 바로 내가 8세 때 사회주의가 들어오면서 토지개혁이 일어나 소작농지를 다 분배해야 했지만 우리가 직접 짓는 땅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 일본 메이지대에서 유학을 할 정도로 식자였던 아버지, 부유한 농가에서 귀하게 자란 형과 누나들은 농사일을 힘들어했다.

그 많은 일들을 힘들다는 생각도 없이 한 것은 나였다. 아직 어리니 일을 안 한들 뭐라 할 사람도 없었건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여졌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2~3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가서 종을 치고,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 학교에 가고, 학교에 다녀와서 또 일을 했다.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것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내가 손대는 일은 이상하게 다 잘되고, 내가 하는 농사는 언제나 남들보다 몇 배의 수확을 거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육이오 사변으로 마을에 폭탄이 많이 떨어져 마을 곳곳이 폐허가 되고 고철들이 생겼다. 그게 돈이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고철이 보이면 새끼줄로 묶어 집으로 끌고 와서 마당 한쪽에 쌓아놓았다.

그것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서 큰 도움이 됐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당시 특수농작물이었던 담배농사를 지어 고수익을 냈고, 담배농사 이후에는 고구마농사로 전환하여 또 많은 수익을 올렸다. 건강하고 힘이 좋아서 그 무거운 고구마 자루를 혼자 거뜬히 수레에 옮겨 싣고 나가 가게에 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