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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은 마음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곳, 좋은 사람들이 모여 비우고 채우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곳, 꿈이 시작되고 '꿈너머꿈'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 아침편지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은 마음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곳, 좋은 사람들이 모여 비우고 채우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곳, 꿈이 시작되고 '꿈너머꿈'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 ||
* 2003년 9월 4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고도원님이 열한번째 꿈이야기 '깊은산속 옹달샘'을 띄워 보냅니다. 이 한사람의 꿈에 한분,한분이 후원해주시며 한사람의 꿈이 만인의 꿈으로 자라나, 마침내 현실이 된 기적의 장소 '깊은산속 옹달샘'이 탄생했습니다. | * 2003년 9월 4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고도원님이 열한번째 꿈이야기 '깊은산속 옹달샘'을 띄워 보냅니다. 이 한사람의 꿈에 한분,한분이 후원해주시며 한사람의 꿈이 만인의 꿈으로 자라나, 마침내 현실이 된 기적의 장소 '깊은산속 옹달샘'이 탄생했습니다. | ||
+ | *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너머꿈이 있으면 위대해집니다. '꿈너머꿈'은 '꿈을 이룬 후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옹달샘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 위대한 꿈을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 ||
+ | * 쉼과 회복의 공간, 옹달샘은 '쉼표'를 찍는 곳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잠깐 멈추어 휴식을 취하는 쉼터이며, 일상에 좀 더 활력을 불어놓고 행복한 사람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충전소 입니다. | ||
+ | * 명상의 공간, '쉼표'를 찍는 것이 '명상'입니다. 잠깐 멈춤! 몰입!을 통해 휴식하며 명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사실 수 있도록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심어주는 '생활명상'입니다. | ||
== 고도원 == | == 고도원 == | ||
1952년 4월 29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학위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월간 뿌리깊은 나무 및 중앙일보 기자, 김대중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 등을 지냈다. 2001년 8월 1일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하였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작가 고도원이 아침마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하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시 또는 좋은 글귀를 인용하여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주를 이룬다. 아침편지문화재단에서 관리한다. 아침편지에는 항상 배경 음악이 포함된다. 꼭 글귀나 편지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수련원 홍보 글 등이 오기도 한다.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명상원이 함께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71년 목사가 될 목적으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으나 학보사 편집장을 지내며 정권을 비판하는 기명 칼럼을 썼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강제 징집돼 군대에 다녀왔고 목사의 길을 그때 포기했다. 학교에서 제적되어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실망할 줄 았았으나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중앙일보에서 이낙연 문창극 등과 함께 기자 생활을 했으며 문창극 씨와는 이견이 커 거의 매일 육박전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중앙일보 기자 재직 중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스카우트되어 청와대에서 일했고 격무 속에 건강 이상이 와서 퇴직하게 된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이고 일종의 메일링 서비스로 시작한 것인데, 초반 수백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몇백만명 수준으로 구독자가 불어난 상태다. 본인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치유를 얻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상대로 힐링 캠프를 연적이 있는 데 이때문인지 정권 내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그 기간 동안 고도원의 저서가 전국 국공립 도서관에 납본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도원이 KBS 사장 응모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고 한다. 국립산림치유원의 원장을 맡고 있고, 비영리 법인인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이사장직도 겸임한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메일 서비스는 지금도 매일 본인이 챙기고 있다고 한다. | 1952년 4월 29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학위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월간 뿌리깊은 나무 및 중앙일보 기자, 김대중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 등을 지냈다. 2001년 8월 1일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하였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작가 고도원이 아침마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하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시 또는 좋은 글귀를 인용하여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주를 이룬다. 아침편지문화재단에서 관리한다. 아침편지에는 항상 배경 음악이 포함된다. 꼭 글귀나 편지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수련원 홍보 글 등이 오기도 한다.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명상원이 함께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71년 목사가 될 목적으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으나 학보사 편집장을 지내며 정권을 비판하는 기명 칼럼을 썼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강제 징집돼 군대에 다녀왔고 목사의 길을 그때 포기했다. 학교에서 제적되어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실망할 줄 았았으나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중앙일보에서 이낙연 문창극 등과 함께 기자 생활을 했으며 문창극 씨와는 이견이 커 거의 매일 육박전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중앙일보 기자 재직 중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스카우트되어 청와대에서 일했고 격무 속에 건강 이상이 와서 퇴직하게 된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이고 일종의 메일링 서비스로 시작한 것인데, 초반 수백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몇백만명 수준으로 구독자가 불어난 상태다. 본인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치유를 얻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상대로 힐링 캠프를 연적이 있는 데 이때문인지 정권 내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그 기간 동안 고도원의 저서가 전국 국공립 도서관에 납본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도원이 KBS 사장 응모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고 한다. 국립산림치유원의 원장을 맡고 있고, 비영리 법인인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이사장직도 겸임한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메일 서비스는 지금도 매일 본인이 챙기고 있다고 한다. |
2019년 8월 27일 (화) 15:15 판
소개
아침편지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은 마음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곳, 좋은 사람들이 모여 비우고 채우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곳, 꿈이 시작되고 '꿈너머꿈'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 2003년 9월 4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고도원님이 열한번째 꿈이야기 '깊은산속 옹달샘'을 띄워 보냅니다. 이 한사람의 꿈에 한분,한분이 후원해주시며 한사람의 꿈이 만인의 꿈으로 자라나, 마침내 현실이 된 기적의 장소 '깊은산속 옹달샘'이 탄생했습니다.
-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너머꿈이 있으면 위대해집니다. '꿈너머꿈'은 '꿈을 이룬 후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옹달샘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 위대한 꿈을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 쉼과 회복의 공간, 옹달샘은 '쉼표'를 찍는 곳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잠깐 멈추어 휴식을 취하는 쉼터이며, 일상에 좀 더 활력을 불어놓고 행복한 사람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충전소 입니다.
- 명상의 공간, '쉼표'를 찍는 것이 '명상'입니다. 잠깐 멈춤! 몰입!을 통해 휴식하며 명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사실 수 있도록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심어주는 '생활명상'입니다.
고도원
1952년 4월 29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학위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월간 뿌리깊은 나무 및 중앙일보 기자, 김대중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 등을 지냈다. 2001년 8월 1일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하였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작가 고도원이 아침마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하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시 또는 좋은 글귀를 인용하여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주를 이룬다. 아침편지문화재단에서 관리한다. 아침편지에는 항상 배경 음악이 포함된다. 꼭 글귀나 편지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수련원 홍보 글 등이 오기도 한다.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명상원이 함께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71년 목사가 될 목적으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으나 학보사 편집장을 지내며 정권을 비판하는 기명 칼럼을 썼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강제 징집돼 군대에 다녀왔고 목사의 길을 그때 포기했다. 학교에서 제적되어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실망할 줄 았았으나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중앙일보에서 이낙연 문창극 등과 함께 기자 생활을 했으며 문창극 씨와는 이견이 커 거의 매일 육박전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중앙일보 기자 재직 중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스카우트되어 청와대에서 일했고 격무 속에 건강 이상이 와서 퇴직하게 된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이고 일종의 메일링 서비스로 시작한 것인데, 초반 수백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몇백만명 수준으로 구독자가 불어난 상태다. 본인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치유를 얻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상대로 힐링 캠프를 연적이 있는 데 이때문인지 정권 내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그 기간 동안 고도원의 저서가 전국 국공립 도서관에 납본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도원이 KBS 사장 응모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고 한다. 국립산림치유원의 원장을 맡고 있고, 비영리 법인인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이사장직도 겸임한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메일 서비스는 지금도 매일 본인이 챙기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