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후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개요)
(가족, 부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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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마음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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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마음이 더 여유로워졌다, 들끓던 잡생각이 끊겼다, 직장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대인관계가 편안해졌다, 나를 알게 됐다, 불면증이 해결됐다, 아이들 남편과 마주 보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마음이 더 여유로워졌다, 들끓던 잡생각이 끊겼다, 직장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대인관계가 편안해졌다, 나를 알게 됐다, 불면증이 해결됐다, 아이들 남편과 마주 보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분들이 느끼고 있는 효과는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느끼고 있는 효과는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차츰차츰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차츰차츰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명상이 있습니다만, 마음수련은 오직 마음에만 집중한 마음 전문 명상입니다. 일주일만 경험해도 참가자들에게 많은 효과를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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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https://meditationwiki.net/wiki/%EB%AA%85%EC%83%81 명상]이 있습니다만, 마음수련은 오직 마음에만 집중한 마음 전문 [https://meditationwiki.net/wiki/%EB%AA%85%EC%83%81 명상]입니다. 일주일만 경험해도 참가자들에게 많은 효과를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직장인=
 
'''엔지니어로서의 나의 견해'''
 
  
저는 서울에 사는 직장인입니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저녁 6시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물론 가끔 야근도 하구요 주말에는 주로 가족들과 혹은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외국어 공부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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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부관계=
저는 마음수련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수련 명상을 한지 약 8년 정도 됐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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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30년 차 신혼부부'''
 
이상한 데 빠진 거 아니야?
 
  
저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한 대기업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고 잘 믿지도 않는 성향의 사람이죠. 마음수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한 선배를 통해서였습니다. 학창시절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똑똑하고 멋있고 존경스러운 선배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휴학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선배의 모습과는 달리 그 동안 마음은 많이 힘들었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저 같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 선배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고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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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신혼처럼 지낸다는 정기언·서희순 부부. 예전에는 대화가 거의 없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태도에 아내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정기언 씨가 마음수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굳었던 얼굴이 풀리고 아이들과 장난칠 정도로 변했다.
  
알고 보니 선배는 그 시기에 마음수련이라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 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았고 보다 집중적인 수련을 위해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로 준 것 이었죠. 그 당시엔 지금처럼 명상이라는 것이 널리 대중화 되지 않았던 시기라, 어떤 걸 하는지 저도 이해가 좀 부족했기 때문에 혹시 이상한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잠시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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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과 생각을 버리고 나니 아내 입장이 보이더라”며 그는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집안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엇보다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고 들어주게 되었다. 아내 역시 수련을 통해 “나도 내 입장에서만 판단했다는 알게 됐다”고 고백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복학을 한 그 선배님을 보면서... 정말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알았습니다.왜냐하면 복학 후에 그 선배의 변한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가장 큰 차이는 정말 행복해보였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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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마음수련이 아니었다면 황혼이혼을 맞이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삶의 동반자로서 진정한 신뢰와 따뜻함을 나눈다. “이해한다는 건 상대보다 아래에 선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처럼, 나를 내려놓고 낮은 마음이 될 때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뭐... 원래도 착하고 똑똑한 선배였지만, 조금은 예민하고 행복해보이지는 않았는데, 다시 만난 그 선배의 모습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매사에 늘 밝고 긍정적이고 남을 먼저 배려하고,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무슨 일을 하던지 먼저 솔선수범 하곤 했었죠. 뭐랄까... 그 나이 또래 대학생들보다 의식 수준이 훨씬 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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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다보면 당연히 어렵고 힘든 일도 겪는데, 그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참 침착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부럽고 존경스러웠어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날은 제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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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극복한 나는 행복한 엄마, 아내입니다'''(김지영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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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화면 캡처 2021-05-05 104646.png|220px|섬네일]]
  
“선배, 거기 뭐하는 곳 이예요?”
 
  
“음... 그냥 마음 버리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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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결혼 후, 아이들과 살림에 매여 자유도 사라지고 남편은 바쁘기만 해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차라리 엄마가 없는 게 낫겠다”는 아이의 말에 충격을 받고, 결국 마음수련 메인센터를 찾았다.
  
“마음 버리는 곳? 마음을 어떻게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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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마음으로 수련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과거에 살고, 남편은 미래에 살며 한 번도 같은 시간을 산 적이 없었다는 것. 가족을 진정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인정하자 눈물이 쏟아졌고, 남편과 아이들을 묶어두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그 동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본인도 오랫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경험과,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또 버리면서 깨달은 것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대한 부분이 참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걸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그 선배가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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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남편이 얼마나 애써왔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잘 커준 건지 감사가 밀려왔다. 마음이 잔잔해지자 남편도 함께 변했고, 우리는 드디어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당신 덕분에 한마음으로 살게 돼 감사하다”는 남편의 말에 또다시 고마움이 차올랐다.
그러다가 저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음수련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 - 나를 철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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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무표정 대신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한다. 조건 없는 감사 속에서, 이제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엄마이자 아내다.
  
선배는 마음수련이 '마음 버리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 말도 맞지만 저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찬찬히, 그리고 덤덤하게 되돌아보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를 돌아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1과정부터 7과정까지 전 과정에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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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샅샅이 떠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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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집착을 내려놓은 사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다 보니 삶에 대한 후회도 있었고 깊은 뉘우침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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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sen2012/223240475415 나의 집착을 내려 놓으면 아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함이라고는 모르던 제가 사소한 것에도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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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방법은 글로 알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어쨌든 큰 틀은 '나를 돌아보는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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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그렇게 수련을 거듭할수록 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의 상당부분이 해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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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마음이 쉽니다''' (구선애 / 서울 동작구)
진짜 저도 돌아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다보니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 - 본성을 찾는 곳 - ''  
 
  
우주, 진리라는 종교적인 느낌의 용어 때문에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단어들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버려나가는 과정을 통해 발견되는 본성'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단어에 매이기보다는 그 뜻과 의미에 더 집중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찾고자 했던 노력은 고대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추구해왔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우주, 하늘, 본성 등을 일컫는 단어들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유학에서도 사람의 본래 모습을 우주라고 했고 방법을 통해 본성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요. 제가 경험해본 마음수련 명상은, 본성을 찾아 그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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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11.jpg|400px|프레임없음|없음|마음수련 후기사진]]
  
마음수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도 닦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는 '마음 전문 기관'이라는 느낌이 더 큽니다.
 
음... 적어도 제가 경험해본 마음수련은 이게 전부입니다.
 
  
'' - 나를 돌아보는 방법이 있는 곳. 본성을 찾을 있는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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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아팠던 시절, 남편과 딸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수련은 제게 기적 같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괴로워하시는 시어머님을 보며 ‘그 모습이 곧 내 미래’라 느꼈던 저는, 명상을 통해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마음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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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과 책임의 짐을 내려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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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투병 속에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역할을 다 못한다”는 자책으로 가득했던 제 마음. 인정받고자 뭐든 열심히 하던 집착이 결국 몸까지 굽게 만들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수련을 통해 그 마음을 버리자, 병에 대한 두려움과 힘든 생각들이 사라지고 자유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마음수련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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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소 마음이 쉽니다 -''
어떤 일을 하던, 욕심과 집착이 아닌 순리대로 지금 이 순간에 맡은바 최선을 다해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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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한다”는 기준과 시비의 틀을 놓으니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따뜻한 대화와 행복한 소통이 이어졌습니다. 바람과 집착을 풍선처럼 날려 보내자 홀가분했고, 그것은 잃음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것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 대신 각자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배려하고,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 보다는 내 안의 가시 같은 마음들이 없는지 먼저 돌아보고 없애고,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 대신 다 함께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과 태도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 프랑스 철학자 에밀 사르티에 (Emil Chartier)는 이런 말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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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병든 몸이 아닌 본래의 나로 서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아무 일도 없는 고요가 아니라, 내 마음이 사라져 쉬게 될 때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지내던 제가 두 발로 서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지금, 함께해 준 가족과 인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이 단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만큼 융통성 있는 사고와 포용력이 중요하다는 거겠죠.
 
  
저도 이제 마음수련을 한지 8년째가 되네요. ^^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없지만 단 한 가지 알게 된 건, 마음도 가꾸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더 소홀해지기 쉬운 것도 마음이죠. 그리고 저는 젊은 나이에 마음수련을 통해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또 가꿀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 비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여유가 생기고 문제가 생겨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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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너는 좀 다른 것 같다, 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 비해 바뀌긴 바뀌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가족 중에 누군가가 마음수련에 너무 빠진 건 아닐까 고민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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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고비 넘기고 진짜 삶 살다''' (김영애 / 보건교사)
  
또 마음수련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하려니 고민이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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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1.jpg|400px|프레임없음|중앙|마음수련 후기사진]]
  
저 역시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것이니 약간 걱정도 하셨지만, 무엇보다 제가 행복해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시고는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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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갑상선암 수술 후 목소리까지 잃자 “내 마음인데도 왜 조절이 안 될까” 절망하며 일기에 눈물만 흘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아”라며 밝은 척했지만, 속은 열등감과 분노로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도 저와 함께 매일 같이 명상을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도 부모님 사이도 훨씬 좋아지셨고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몸도 건강해지셨다고 참 만족스러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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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을 하며 처음으로 내 내면과 정직하게 마주했다. “행복한 척, 긍정적인 척” 포장만 해온 삶, 언니와 비교하며 쌓아온 열등감, 인정받고자 쌓아올린 자존심이 결국 병이 되어 있었다. 세포 구석구석 끼어 있던 묵은 마음을 버릴 때, 막혀 있던 돌덩이가 빠져나가는 듯했고, 기적처럼 사라졌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살도 빠지고 체력도 회복되어 합창단에서 노래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님과 관심사가 달라지다 보니 저절로 대화도 줄어들고 서먹해지기 마련인데, 저는 부모님과 같이 명상을 하면서 마음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제는 진짜 부모자식 관계를 넘어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이점이 저는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린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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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서 벗어나려면 병에 대한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몸은 고장 나면 고쳐 쓰는 도구일 뿐, 진짜 나는 마음을 버리고 드러나는 본래의 존재였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살고 싶다”던 꿈, 마음수련을 통해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암은 오히려 나를 진짜 삶으로 이끈 선물이었다.
  
'''마음수련원 에서 찾은, 트라우마 극복하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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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삶의의미=
[[파일:소방관.png|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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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임재현 / 화성시 남양동)
  
장학수 소방관. 그가 하는 일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 사고 등 각종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출동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직업의 특성상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아야만 했다. 마음 빼기를 하며 비로소 그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장학수(46) 소방관.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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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9.jpg|400px|프레임 없음|중앙|마음수련 후기 사진]]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각종 사고 현장에서 보게 되는 처참한 광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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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할아버지와 지내다 부모님 품으로 오게 된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 공부와 성적 집착 속에서 부모님을 원망했고,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장래희망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쓸 만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깊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가 처음 죽음을 접했던 건 교통사고 현장이었죠. 중년 여성의 운구를 이송했었는데 뇌리에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2005년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고 본격적으로 응급구조 업무를 하면서 상황은 더했어요.
 
추락사, 자살, 교통사고 등 각종 사건 사고들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장면 장면이 진하게 각인이 되더라고요.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가위눌림도 당하고….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한 현장에 갔을 경우엔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르니까 참 많이 괴로웠죠.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굴뚝같았어요. 정말 이직을 하고 싶을 정도였죠.
 
  
그 무렵 우연히 마음수련에 대해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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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와 유학으로도 해답을 찾지 못하던 중, 미국에서 《연금술사》를 토론하다 “가장 소중한 건 내 안에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계기로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성적·인정·열등감 등을 돌아보고 버렸지만 가장 큰 숙제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마음조차 버릴 수 있었다.
‘진짜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거기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간절히 찾던 중이라 바로 논산 메인센터에 갔습니다.
 
  
처음엔 기억을 떠올려 버린다는 게 힘들데요. 특히 죽음과 관련된 사진을 버릴 때는 그 감정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면서 오기 반 간절함 반으로 버려나가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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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몰랐다”는 부모님의 고백을 들으며, 쌓아둔 가짜 마음을 내려놓자 처음으로 자유로움과 이해가 찾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삶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었고, 장래희망이었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진짜로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허무함 대신 감사와 화해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신기한 건 수련한 지 3일이 지났을 뿐인데,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든다는 거예요.
 
수면 장애가 있어서 잠 한번 자려면 한 시간 이상을 뒤척이면서 실랑이를 벌여야 했거든요.
 
자다가도 3~4번씩 깨니까 늘 피곤했는데, 잠을 푹 자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우선 출동에 대한 두려움들이 조금씩 사라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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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회피하고 싶었던 현장에서 사건 사고를 담담하게 처리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찾으니까 하루에 10건 이상씩 사고 처리를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진정한 휴식은 마음에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소방관, 경찰관 등은 다른 직종에 비해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밝아 보여도 눌러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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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인생에서 즐거운 인생으로'''(송명근 / 강서구 화곡동)
그래서 이런 직종의 분들은 특히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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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화면 캡처 2021-05-05 104355.png|200px|섬네일]]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한 번쯤 싹 리모델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힘든 마음들 털어내고, 무거운 기억들을 빼내고 나면 새롭게 편안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그냥 몸이 뛰어나가지, 어떤 번뇌도 생각도 없어요.
 
“가자! 빨리 가자!” 하고, 오직 내가 필요한 그곳을 향해 힘차게 출동할 뿐입니다.
 
  
 +
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난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삶은 혼란에 빠졌다. 무기력과 불안 속에 억지로 취업했지만 직장생활은 지옥 같았고, 결국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음수련을 찾았다.
  
'''아토피 전문 한의사 박치영씨의 마음수련 이야기'''
+
명상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어릴 적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애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칭찬을 받기 위해 눈치 보고, 착한 척하며 살았던 모습은 결국 열등감의 가면이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늘 부정을 가득 안고 있던 나였다.
[[파일:한의사 박치영.png|섬네일]]
 
''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
 
 
피부 계통의 명의로 알려진 박치영 한의사. 그가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오랫동안 심한 피부병을 앓으며 생긴 환자들의 마음의 병까지도 함께 치료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보통 서양의학에서 아토피는 난치성 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90% 이상 치료된다고 확신한다. 치료법의 근본 원리는 바로 ‘독소 빼기’. 박치영 한의사가 전하는, 행복한 삶을 위한 몸 마음 빼기 이야기. 정리 최창원 사진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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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명상을 통해 마음들을 하나하나 버리자, 가짜였던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삶의 막연한 불안이 사라지고, 억지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혼란 대신 내일이 기대되는 즐거운 삶을 살며,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
피부 질환을 고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해요. 살아온 환경은 어떤지, 작업 여건은 어떤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래서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오랫동안 아토피 같은 피부병을 앓고 나면 마음까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심하면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까지 앓기도 하죠.
 
  
특히 요즘에는 ‘국민병’이라고 할 만큼 아토피 환자가 많아졌는데,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말도 못하게 힘들어요. 통증보다 참기 힘든 게 가려움인데, 하루 종일 긁고 보채고 우는 데다 몸을 하도 긁어서 온몸에 피가 나는 걸 봐야 하니까요. 정말 하루 종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꼭 낫게 해드리고 싶어집니다.
+
=스트레스=
 +
'''마음수련원 에서 찾은, 트라우마 극복하는 비법!''' (장학수 / 소방관)
  
“잘 오셨습니다. 피부병은 고칠 수 있는 병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같이 치료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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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8.jpg|250px|썸네일|오른쪽|장학수/소방관]]
  
이런저런 치료 방법들을 시도해보다 좌절하신 분들이 많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피부병이 낫는 데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해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잡지요. 점점 염증이 사라지고 깨끗한 새살이 돋아나면서 환자들 얼굴에 웃음이 피어날 때 저도 너무 행복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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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수 소방관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사고 등 위급한 현장을 지키며 수많은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처음 죽음을 접한 뒤, 추락사·자살·사고 현장들이 머릿속에 깊게 남아 늘 괴롭고, 악몽과 가위눌림, 수면장애까지 겪었다.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직을 고민하던 그는 마음수련을 만나 논산 메인센터에 들어갔다.
사실 서양의학에서는 아토피는 난치성 질환이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동안의 경험상 90% 이상은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치료 원리는 단순해요. ‘배독 요법’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빼기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잘못된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으로 생긴 내부의 염증이나 독소들을 땀으로 빼내는 거예요. 그래서 한약 처방과 함께 목욕법, 운동법, 식이요법 등을 병행합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절 운동을 권하기도 해요. 30분 정도 절을 하면 땀이 나면서 독소도 제거되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서 스트레스 관리도 되거든요.
 
  
피부는 내부 장기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아요. 동의보감에 ‘폐주피모(肺主皮毛)’라는 말이 있는데, 즉 폐가 피부와 털을 주관한다는 말입니다. 아토피를 예를 들면, 폐와 호흡기를 중심으로 한 전신의 불균형에서 온 이상(atophos)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신체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탁한 기운이 배출될 수 있도록 폐 기능을 향상시켜 주고, 장기의 균형까지 잡아주는 방법을 통해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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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끔찍한 기억을 떠올려 버리는 게 힘들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버려나가자 신기하게도 사흘 만에 머리만 대면 곧바로 잠들 수 있었다. 수면장애가 사라지고, 출동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이제는 하루에 10건 넘는 사고도 담담히 처리하며 마음의 평온 속에 진정한 휴식을 얻었다.
  
그리고 마음의 빼기도 정말 중요합니다. 염증(炎症)이라고 할 때, 염은 불 화(火)자 두 개가 붙잖아요. 오늘날 아토피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많아요. 화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당황하거나 열 받으면 얼굴이 붉어지잖아요. 긴장, 우울, 분노, 근심, 걱정 같은 마음의 스트레스들이 몸의 기혈을 막고, 혈액의 흐름을 정체시키니까, 피부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피부도 칙칙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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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소방관, 경찰관 같은 직종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집을 리모델링하듯 마음도 한 번쯤 리모델링했으면 합니다.”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오직 필요한 곳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에게는 마음 빼기를 함께 권해요. 피부 관리 노하우를 묻는 분들에게도 고가의 화장품이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빼는 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 스트레스를 빼내고, 몸에 안 좋은 것을 덜 먹고, 등산 운동 반신욕 등을 통해서 독소를 빼내는 습관이 몸에 배면 피부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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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빼기 치료’를 이해하게 되고, 한의사로서의 비전을 갖게 된 것은 마음수련을 통해서였습니다. 마음수련은 대학 본과 2학년 때 하게 되었는데, 마음수련의 원리는 정말 과학적이고 간단했어요. 내가 쌓아온 마음을 빼버리면, 원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죠. 한의학에서는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잖아요. 실제로 마음수련을 하다 보니까 내가 우주고, 사람이 우주더라고요. 그걸 알고 난 뒤로는 한의학이 너무나 잘 이해가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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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갔던 프로댄서의 선택''' (이항우 / 안산시 상록구)
  
그러다가 운 좋게 공중보건한의사 생활을 하면서 피부 질환 치료에 엄청난 노하우가 있는 한의사분을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그분의 스승님도 만나게 됐는데, 치료의 원리는 빼기였어요. 이미 마음수련을 하면서 빼기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딱 다가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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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12.jpg|400px|프레임없음|없음|마음수련 후기 사진]]
  
제대 후에 한의원을 개원해서,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증의 아토피 환자, 건선, 지루성피부염, 두드러기, 여드름….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면서 모든 피부병이 ‘빼기의 원리’로 나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지요. 그리고 실제 낫는 병인데도 ‘아토피는 불치병’이라고 인식하는 의사들이 많은 게 안타까워서, 책도 쓰고 무료 강의도 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거든요.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제가 단순히 피부의 병만이 아니라 삶의 희망까지 줄 수 있는 의사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한 환자분이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셨어요.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연애 한번 못해본 아가씨였거든요. 온갖 좋다는 방법을 다 써 봐도 안 되니까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저희 한의원에 온 거였어요. 1년 정도 꾸준히 치료받으면서 나았는데, 그 아가씨의 소원이 연애였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신다니 정말 기쁘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하게 돼요.
 
  
''-“원장님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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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김완선·민해경·김건모·신승훈·이승철 등 TV를 휩쓴 가수들 뒤에서 춤추던 그는 우리나라 최정상의 댄스팀을 꾸린 ‘잘나가는 댄서’였다. 하루 두세 개씩 방송을 소화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시작은 내성적이던 대학 시절 축제 무대였다. AFKN 방송과 ‘Grease’를 따라추며 연습에 빠져들었고, 칭찬과 환호 속에 “나를 인정받게 해준 춤”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디스코 대회에서 상금과 상품을 휩쓸던 그는 인순이 매니저의 제안으로 국내 첫 남자 프로댄서가 됐다.
  
언젠가 한 환자분이 진료 중에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예,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라는 대답이 저도 모르게 나오더군요. 그분이 보시기에 제가 늘 행복해 보여서, 언젠가 꼭 묻고 싶으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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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완선 ‘오늘밤’ ‘리듬 속의 그 춤을’부터 여러 가수 안무 요청이 쇄도했고, KBS ‘젊음의 행진’ 전속 안무까지 맡으며 50명 규모의 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세대 변화로 팀을 유지하지 못하고 10년 넘게 몸담았던 무대를 떠났다. 자영업으로 돈을 모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아쉬움과 허함, 술로 지친 몸과 마음이 남았다. 그때 조카의 권유로 논산 메인센터 마음수련에 발을 들였다.
  
사실 한의사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평수 없는 감옥에 산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봐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학생 때부터 매일매일 마음을 빼면서 살다 보니까, 갈수록 세상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점점 편해져간 거 같아요. 지금도 늘 하루를 돌아보며 저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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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쉬러 왔는데 잘못 왔나’ 싶었지만, 시키는 대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 중심적인 입장에 빠져 있을 땐 몰랐던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시기·질투·멸시, 트렌드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내가 왜 망했는지 알았고, 마음을 한 겹 한 겹 빼니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휴식을 느꼈다. 스트레스성 알러지 약도 끊었다.
"오늘 하루 환자분들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한분 한분 귀하게 대했는가? 초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누구를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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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논산 메인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며 ‘잘 춘다 못 춘다’는 마음 없이 함께 춤을 추는 즐거움을 맛본다. “가짜마음 속에 살면 지옥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진짜마음으로 살면 천국”임을 깨달았다.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오세천,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내가 너를 보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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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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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오세천 /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초등학교 때였다. 육이오 전쟁 중이었지만 소를 몰고 온 들판을 다니며 풀을 먹이고 들어오는 나에게 ,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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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10.jpg|450px|프레임없음|없음|마음수련 후기 사진]]
이후에도 어머니는 종종 '내가 너를 보면 덜컥 겁이 난다'고 하셨다
 
어린아이가 그 힘든 농사일을 너무 악착같이 하니, 놀랍고 기특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아니 뱃속에 있을 때 지우려고 약까지 먹었는데, 끈질긴 생명력으로 태어난 아이가 누구도 안 하려 하는 힘든 일들을 하니, 안쓰럽고 미안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다.
 
  
9남매 중에 일곱 번째로 태어났기에, "내가 너를 지우려고 약을 먹었었다'는 말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잠재의식 깊이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자리 잡혀서였을까. 생존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커서였을까.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니 열심히 살아졌다.
 
  
삶의 의미 ''- 내가 사는 것인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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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보면 무섭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하신 이 말은, 전쟁 중에도 악착같이 농사일을 도맡던 나를 보고 놀랍고 안쓰러워 하신 마음이었을 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조차 지우려 했던 아이가 끈질기게 태어나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도맡으니 그랬으리라.
  
우리 집은 집터만 400평이 넘는, 여러 소작농까지 둔 부유한 농가였다. 해방 후 바로 내가 8세 때 사회주의가 들어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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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유한 농가의 일곱째였지만, 남들 대신 부지런히 일했다. 새벽에 교회 종을 치고, 들일을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농사. 내가 손댄 농사는 언제나 풍년이었고, 고철을 모으거나 담배·고구마 농사를 지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했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기술사 시험에도 단번에 합격, 건설공무원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가정도 화목했고 아이들 역시 바르게 자라주었다.
토지개혁이 일어나 소작농지를 다 분배해야 했지만 우리가 직접 짓는 땅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 일본 메이지대에서 유학을 할 정도로 식자였던 아버지, 부유한 농가에서 귀하게 자란 형과 누나들은 농사일을 힘들어했다. 그 많은 일들을 힘들다는 생각도 없이 한 것은 나였다. 아직 어리니 일을 안 한들 뭐라 할 사람도 없었건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여졌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2~3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가서 종을 치고,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 학교에 가고, 학교에 다녀와서 일을 했다.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것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내가 손대는 일은 이상하게 다 잘되고, 내가 하는 농사는 언제나 남들보다 몇 배의 수확을 거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육이오 사변으로 마을에 폭탄이 많이 떨어져 마을 곳곳이 폐허가 되고 고철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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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늘 순탄했던 이유는 60세에 접한 마음수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삶이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살아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태중에서 죽을 뻔한 경험, 물에 빠져 떠내려간 경험처럼 죽음을 마주했던 순간들이 내 삶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그게 돈이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고철이 보이면 새끼줄로 묶어
 
집으로 끌고 와서 마당 한쪽에 쌓아놓았다.그것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서 큰 도움이 됐었다.중학교 2학년 때는 당시 특수농작물이었던 담배농사를 지어 고수익을 냈고,  
 
담배농사 이후에는 고구마농사로 전환하여 또 많은 수익을 올렸다.
 
건강하고 힘이 좋아서 그 무거운 고구마 자루를 혼자 거뜬히 수레에 옮겨 싣고 나가 가게에 팔기도 했다.
 
중학생이 뭘 알아서 그랬겠는가. 이렇게 하면 돈을 벌 거야 하는, 어떤 계산도 없이 그저 열심히 움직이고 나면
 
그것이 필요한 등록금이 되고 생활비가 된 것이다.
 
  
원하던 대학의 토목학과에도 무난히 들어가고, 그 어렵다는 기술사 시험에도 한번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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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모두가 하나 되어 사는 비결은 자기 마음 버리기"다. 마음을 비우면 내 주장보다 상대를 존중하게 되고, 삶은 순리대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흘러간다. 나는 그 은혜를 알고, 마음을 비운 덕에 더욱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이후 건설공무원을 하면서 우수공무원으로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나이 서른에 꾸린 가정도 성공이었다. 중매로 만난 아내는 일본 문화복장학원에 유학 중인 미모의 재원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함께 1남 2녀를 키우면서 큰소리 한번 나는 일 없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아이들 역시 엇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다.
 
  
''- 죽음의 경험이 심어준 삶의 지혜 -''
 
  
한마디로 참 평탄한 삶이었다. 스스로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하고자 하는 일에 어떤 장애가 닥쳤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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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사는가? 그 답을 찾다'''(미하이 미할치욱 / 루마니아 출신, 호주 퍼스 거주)
좌절한 적도 없으니, 돌아보면 참 신기하고도 이상한 내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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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화면 캡처 2021-05-05 101642.png|섬네일]]
그렇게 살아졌는지 이해된 것은, 나이 육십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면서였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라는 존재가 쌓아온 모든 마음을 버리게 하는 마음수련은, 나라는 이기적인 존재를 없어지게
 
함으로써 편안한 순리의 삶을 살게 하는 명상이었다.
 
  
잉태되면서부터 죽음의 공포를 겪어야 했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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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머니는 그 시대 시골에서 듣고 알았던 아기 지우는 독한 약초를 먹었지만 지워지지 않아, 또 다른 약초를 과하게 먹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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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이 질문은 부모님도, 교회도, 책도, 세계 곳곳의 영적 스승들도 답을 주지 못했다. 돈과 명예, 쾌락으로 채워보려 했지만 내면은 늘 공허했고, 삶은 불완전했다.
아기보다는 당신이 돌아가실 뻔했다고 했다. 갑작기 배가 심하게 아프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고, 뱃속의 아기가 요동을
 
쳐오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몇 차례나 계속돼 죽을 뻔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많이 후회했고,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고 했다. 뱃속의 태아에게도 그것은 단순한 죽음의 공포를 넘어
 
이미 죽음의 목전에 갔던 경험이었으리라..... 죽음에 대한 경험은 또 있었다.
 
여덟살 무렵 냇가의 물에 빠진 적이 있다. 헤엄도 못 치는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강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떠올랐다를 반복하면서 500 미터를 떠내려가다가 동네 형이 구해줘 살아났었다.
 
그렇게 죽음과 직면했던 경험은, 한순간 삶을 내려 놓게 하고, 삶이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잘나 사는 것이 아니라 순리에 의해
 
저절로 살아지는 것임을, 겸허하게 깨닫게 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일하며 학교에 다녔고, 집안의 대소사를 다 챙겼고, 50년 넘게 직접 선산을 관리했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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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퍼스 마음수련 센터에서 "버리면 스스로 답을 알게 된다"는 말을 듣고 수련을 시작했다. 방법은 단순했고, 2주 만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되는 기적 같은 경험을 했다. 1~7과정을 거치며 삶과 죽음, 존재의 모든 질문에 답을 얻었고, 좁은 인간마음 대신 무한한 우주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도 소소하게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설거지까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은 무조건 먼저 했다.
 
  
사람이라면 어찌 고생스럽고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어떻게 그렇게 힘들다, 하기 싫다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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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트레스 대신 행복만 가득하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신기했는데, 그 이치가 마음수련을 만나면서 깨달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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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같던 인간마음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영원한 안정을 찾았다. 돈과 명예도 대신할 수 없는 진짜 행복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남긴 ‘빈손의 교훈’을 떠올리며, 진정한 정복은 세상을 가로막는 거짓된 마음을 버려 참세상을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성공 비결''- 모두가 하나되어 사는 비결, 자기 마음 버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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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처럼 당신도 우주마음을 회복해 한마음으로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순리의 삶이다.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이 내 뜻과 상관없이 저절로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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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열등감=
자연스럽게 저절로 사는 자체가 평화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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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 서울대생의 콤플렉스 극복기, 마음수련 명상 효과'''(박강우 / 대학생)
  
물이 돌을 만나면 피해 흐르고, 가다가 또 나무 둥치를 만나면 옆으로 흐르듯, 부지런히 움직이되 남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살면 저절로 성공하고 잘살게 된다. 아니, 그렇게 산다는 마음 없이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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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2.jpg|380px|프레임없음|중앙|마음수련 후기 사진]]
사람들은 흔히 '우리는 하나다, 마음을 모으자'라며 구호를 외치고 결의를 다지고는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르고 보니 그게 참 힘들다. 못 하나 박는 것도, 거울 하나 다는 것도, 이 사람은 이랬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저랬으면 좋겠다 하고 부딪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 말이다. 그것이 해결되는 비결은 딱 하나다.
 
마음을 비워 자기 마음이 없어지면 저절로 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를 존중하게 되고 하나가 되기에 서로 싸울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마음 비우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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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살이 급격히 쪄서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대에 입학해 20kg을 감량했지만, 불안과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살이 쪄도 강박적으로 운동했고, 멋지게 꾸미지 않으면 집 밖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외모에 집착했다.
우리 삶과 마음의 이치까지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 오세천 님은 1939년 경북 김천에서 9남매 일곱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부산대학교 토목학과 졸업 후 건설공무원으로 재직했으며 부지런함과 청렴결백을 인정받아 우수공무원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1969년 결혼,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마음수련을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님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마음수련 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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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대학생 마음수련 캠프를 통해 그동안 감춰왔던 콤플렉스를 하나하나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과 나 사이의 벽이 사라지고 콤플렉스란 애초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마음의 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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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는 꾸미지 않아도 당당해졌다. 친구들 앞에서 콤플렉스를 솔직히 털어놓자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는 말을 들었다. “가짜는 끊임없이 치장하지만, 진짜는 꾸미지 않아도 빛난다”는 말처럼, 이제는 허상의 삶이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다.
'''우울증 극복,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마리아 트레이시 /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주)
 
  
( 마리아 트레이시는 슬로바키아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으나,외로움과 우울증으로 힘들었고, 그 마음의 고통은 결혼 생활로도 해결되지 못했다지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마음수련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마리아 트레이시. 그녀의 솔직 담백한 마음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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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여...' 행복 찾아 떠난 미국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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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들아, 이제 다른 선택을 해보자'''(김경미 /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나의 고향은 슬로바키아의 서쪽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마을로,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시시콜콜한 모르는 게 없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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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3.jpg|350px|프레임없음|중앙|마음수련 후기 사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슬로바키아의 수도에 있는 한 미국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 시절 TV에서 미국 쇼를 많이 봤는데 그 속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었고 나는 뉴욕으로 가
 
어느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집안일을 해주는 대신 영어를 배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후 나는 외로워지기 시작했고 곧 우울증에 걸렸다.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겼으며 많은 곳을 가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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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 씨는 매일 학교폭력, 절도 사건 등으로 법원을 찾는 청소년들을 상담한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왜 나만 벌을 받아야 하냐”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는 “나는 네 부모도, 선생님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며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 어느 것도 행복하지 않았다. 식구들 생각을 자주 했고 많이 울었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남자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
 
생각하게 되었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해서 이전에 꿈꾸었던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되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 화가 나도, 슬퍼도, 행복해도 울고... 감정 조절 전혀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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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 내 잣대로 판단하려 했지만, 대학원 시절 접한 마음수련을 통해 달라졌다. 삶에서 쌓인 마음을 버리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4과정에서는 “모두와 하나” 되는 체험을 하며 상담에 대한 고민도 풀렸다.
  
남편과 나는 라스베이거스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고 나는 더 우울해졌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약을 먹자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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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선택하며 사는데,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 작은 상담과 이해만으로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 가장 보람되다. 김경미 씨는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마음 빼기를 이어간다.
내가 좀비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매우 집착을 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집에는 붙어 있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늘 울었다. 화가 나도, 슬퍼도, 행복해도 울었다. 감정을 전혀 조절할 수가 없었다.
 
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가 마음수련 책자를 보게 되었다. 그 책자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과 함께 있었고 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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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불면증 =
'마음수련(Meditation life)'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책자를 집어들고 집에 가지고 왔다. 그전에는 명상 같은 것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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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극복,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마리아 트레이시 /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주)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왜 이 명상을 '마음수련'이라고 하는지, 마음 (Mind) 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책을 남편에게 보여주었고 우리는 함께 공개강좌에 참석했다.
 
 
 
''- 슬픔, 외로움, 화, 우울증... 점차 사라지게 한 마음수련 -''
 
  
그 결정이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일단 한 달만 해보기로 하고 별로 마음에 안 들면 안하기로 남편과 결정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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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나는 미국 드라마 속 ‘행복한 삶’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하지만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혼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한 뒤 항우울제를 먹었지만 “좀비가 된 것 같다”는 느낌뿐, 감정을 전혀 조절할 없었다.
두 달, 세 달, 그러다가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우리의 삶은 이보다 더 행복할 없다.
 
  
" 마음수련은 정말 기적이다. 내가 살면서 겪었던 온갖 종류의 슬픔, 외로움, 화, 어두운 느낌, 내 우울증도 포함해서, 점차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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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마음수련 책자를 발견했고, 남편과 함께 시작했다. 한 달만 해보자 했던 수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어디에서나 나를 따라다니고 내 삶의 매순간을 조종했으나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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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은 정말 기적이다. 슬픔, 외로움, 화, 우울증이 점차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 돈의 노예가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 이런 것들이 사라졌다. 마음수련을 하기 전에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즐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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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어서 겉으로는 행복한 척,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척,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고 있는 척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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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남편과의 갈등도 금방 있고, 가족에 대한 따뜻함과 감사가 커졌다. “내 삶은 꽃봉오리가 만개한 것 같다.” 힘든 순간 속 길을 잃은 누구라도, 나처럼 마음수련을 통해 다시 행복해질 있다고 믿는다.
속으로는 죽어 있었다. 마음수련은 나에게 영원한 행복과 평화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오랫동안 멀고 낯설게 느껴졌던 남편과 가족들에 대해서도 보다 잘 이해를 하게 되었고 좀 더 따뜻하고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해결한다.
 
 
 
''- 내가 힘들 때 그랬듯이, 마음수련은 당신을 위해 있는 것 -''
 
 
 
내 성격 중에 안 좋은 점 하나는 한 번 화가 나면 며칠씩 간다는 것이다. 남편과 싸우고 나면 며칠, 어떨 때는 일주일씩 말을 안 하곤 했는데
 
이 버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의 이런 면이 싫었지만 고치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은 싸우고 나면 해결법을 금방 있다. 내 잘못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가끔 남편이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지만, 나한텐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즘 나의 삶은 마치 꽃봉오리들이 만개한 것 같다. 정말 모든 사함들이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살면서 아주 힘든 순간이 있을 것이고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있는지 모르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마음수련은, 내게 해주었듯이 당신을 위해 그곳에 있을 것이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다''' (최심진 / 직장인)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다''' (최심진 / 직장인)
 
[[파일:화면 캡처 2021-04-30 135823.png|섬네일]]
 
[[파일:화면 캡처 2021-04-30 135823.png|섬네일]]
난 거울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편안하고 밝고 안정된 얼굴이 아닌 경직되고 화가 난 듯 무서워 보이는 내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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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내 모습은 늘 경직되고 어두워 보기 싫었다. 웃고 싶어도 마음속 우울과 불안이 얼굴에 드러났고,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가 원망이 앞섰다. 세상은 늘 창밖에서 바라보는 남의 이야기 같았다. 그러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아이에게 이런 우울한 마음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웃을 일이 있을 때마저 활짝 웃지 못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굳어져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될 때는 그것이 너무도 싫고 슬펐다. 마음이 힘들면 얼굴이 새까매져서 아무리 화장을 해도 감출 수 없었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을 봐도 산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보다는 그 삶의 무게가 너무도 벅차고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살다가 삶을 마감하고 결국엔 없어지는 게 인생이라면 신은 인간을 만들어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원망도 많이 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분명 이렇게 살다 가는 게 다는 아닐 텐데, 진정한 행복과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건지….
 
세상 어디에도 답은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항상 그 끝에 찾아오는 건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함뿐이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에 갇힌 만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에게 세상이란 창밖을 통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대상, 아련하고 멀고 먼 남의 이야기였다.
 
  
''- 엄마의 힘든 마음 물려주기 싫어 태교로 명상 시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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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며 깨달은 건 우울의 원인은 엄마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오빠와 비교·질책 속에 자라며 형성된 열등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쌓인 공포와 상처, 엄마에 대한 원망을 하나하나 버리자 마음이 가벼워지고 이해와 감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언니, 힘들어 보여. 마음수련 해봐. 해보니까 좋네.
 
  
동생이 마음수련을 권했다. 좋다는 그 말에 끌려서 바로 지역센터에 등록해서 명상을 시작했다. 등록 후 며칠이 지나 임신 사실을 알았다. 유아교육을 공부했던 나는 태교의 중요성을 너무나 알고 있었다. 허무함과 쓸쓸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있는 엄마의 우울함이 뱃속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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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바뀌어 사람들과 어울리고, 딸 역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마음을 비워야 진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나는, 이제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올 있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거였기에 나는 명상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막연히 우울함의 원인이 엄마의 죽음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평생 너무도 힘들게 사신 엄마가 이제 좀 살 만하니까 돌아가셨을 때, 사는 게 뭔가, 세상에 나왔으면 행복하게 잘 살고 끝을 내야 하는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인생 자체에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가정을 가지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 결혼도 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남편과의 부딪침 또한 점점 극에 달해 갈 뿐이었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정말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상을 통해 이 우울함의 원인은 엄마의 죽음 그 이전, 그보다 더 훨씬 이전부터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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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황장애,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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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가 사라지다'''(고권호/ KT 네트웍스근무)
  
'' - 폭력적인 오빠로 인해 불우했던 어린 시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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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4.jpg|400px|프레임없음|중앙|마음수련 후기 사진]]
  
나는 1966년 전라도 광주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이 셋을 두고 사별하신 아버지가 재혼으로 맞은 두 번째 부인이 나의 엄마다.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은, 오빠를 낳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빠는 그 충격이 커서인지, 엄마가 없어 마음을 못붙이며 자라서인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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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와 열등감에 시달리던 고권호 씨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불안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약도 먹어봤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죽는구나” 싶을 만큼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안 가고 걸핏하면 집을 나갔고, 커가면서는 더욱 폭력적이 되었다. 술 먹고 와서 다 때려부수는 건 부지기수였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상상을 초월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빠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빠가 집에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조차 제대로 못 쉬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엄마가 이 집을 떠나려다가도 당신 자식들 때문에 다시 돌아왔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가 너무도 불쌍하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엄마가 진짜로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내가 아들인 줄 아셨단다. 오빠가 아들 역할을 못하니 아들을 간절히 바랐다가 낳고 보니 딸이라 실망이 크셨다. 게다가 첫째 언니는 돌 전에 기저귀를 뗐는데 나는 느리고 잘 가리지 못해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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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동료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수련. 그는 “나는 여리다, 소심하다”라는 기억과 상처, 부모에 대한 원망까지 하나하나 버려나갔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자 서류 한 장,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위축되던 예전의 자신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언니들에 비해 똑똑하고 야무지지 못하다고 비교당하고 야단을 맞아서였을까, 나는 늦게까지 오줌 가리기도 잘 못했다. 밤에 잘 때면 실수할까 봐 겁나고 무서웠고, 자다가는 그 두려움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실례를 했다.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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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고 마음 빼기만 했을 뿐인데, 공황장애가 밤손님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한번은 초등학교 가기 전 언니가 공부를 가르쳐줬는데 계속해서 틀리자 그걸 보고 있던 엄마가 심한 말을 했다. 그 순간부터 나 스스로 난 멍청하고 쓸모 없고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엄마의 그 부정적인 말들이 바로 내 인생 자체를 지배했다는 것을, 명상을 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야단맞으면 어떻게 하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에 항상 사로잡혀서, 스스로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고 먼저 포기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늘 불안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던 나. ‘난 못할 거야’ 하며 늘 위축됐던 내 모습은 그 모든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인해 형성된 나였다.
 
  
'' - 마음 비운 만큼 사라져간 우울과 불안의 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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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직장생활도 달라졌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넓어지고 편안해졌다. 모임도 주도할 만큼 적극적으로 변한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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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 마음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다. 힘들다면 내 마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해서 너무도 슬펐던 나, 오빠를 보면 늘 불안하고 무서웠던 마음, 엄마에 대한 원망 그리고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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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마음들을 열심히 버리고 또 버리고 버렸다. 남들보다 늦어도 좋았다. 남들이 백 걸음 갈 때 나는 한 걸음 가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마음수련을 해나갔다. 그 결과 나에게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힘든 마음이 버려질수록 그 마음이 옅어지고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미움과 원망이 떠나고 대신 이해와 미안함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불행하다는 마음에 갇혀 버린 채 그 한과 상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 오빠. 그때 누구라도 정신적인 치료와 상담을 도와줬더라면 오빠도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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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과잉행동장애’라구요?'''(최영미 / 주부)
  
사람은 배워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자식 교육을 위해, 매일 서너 시간씩밖에 못 주무실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셨던 엄마. 하지만 큰아들 농사를 못 지었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려야 했었다. 나머지 자식들이 위안이고 자부심이었을 엄마 입장이 되어보니, 그 세월을 지켜주신 엄마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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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잦은 다툼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던 큰아이는 산만해지고 동생에게 난폭해졌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친구 없어도 괜찮아, 나 싫어해도 괜찮아”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병원에서는 음성 틱 증상이라 했고, 4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상담을 권유했다. 결국 소아정신과에서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에게서 부정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설명에 엄마는 “미안하다, 아들아” 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내가 받고 싶은 걸 주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또 다른 비수를 꽂으며 살아왔었구나…. 엄마한테 미안했다.
 
좀 더 노력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열등감 뒤에 숨어 늘 자포자기하고 항상 주변에 바라기만 했던 날들도 떠올랐다.
 
  
'' - 편안해진 엄마 밝게 자란 딸, 마음수련은 최고의 태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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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알게 된 마음수련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했던 잘못과 자기중심적이었던 마음을 돌아보며 버리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며 아이의 감정을 억눌렀던 지난날이 참회로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자 아이의 행동도 달리 보였다. 여름방학에는 청소년 캠프에 보내 마음의 자유를 경험하게 했다.
  
결국 나는 어릴 때 사진처럼 찍어 놓은 마음들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그렇게 나만 보호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만의 마음세계 속에 갇혀 산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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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이는 “뭘 그런 얘기를 하냐고, 다 버렸다”며 엄마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또래들과 어울리며 놀았다. 틱 증상도 거의 사라졌고 반장 선거에도 당선되었다. 집으로 친구를 데려오고, 밴드부에서 기타를 배우며 활기차게 생활했다. 어느 날은 “엄마, 내가 세상을 너무 재미없게 산 거 같아, 이젠 재밌게 살 거야”라며 웃어 보였다.
  
어떤 마음이든 한 번 그렇게 입력이 되고 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그 모든 마음들을 버릴 수만 있다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내 속에 켜켜이 쌓여진 마음들이 깨끗이 비워진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이 자유로워지고 행동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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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씨는 말한다. 부모들은 대개 아이가 변하기만을 바라지만, 사실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부모라는 ‘환경’이다. 영어캠프나 해외연수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일이며, 마음수련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처음 마음수련을 시작했을 때의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보면 놀랍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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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효율,집중력=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에게서는 옛날의 그 어두웠던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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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이유, 진짜 삶의 의미를 깨닫다'''(윤진영 / 치과의사)
  
참, 딸아이의 이야기도 해야겠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자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마음을 비워서인지 참 밝고 씩씩하다. 친구들이나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고 자기 일은 척척 알아서 하니, 마음수련은 정말 최고의 태교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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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6.jpg|250px|썸네일|오른쪽|윤진영/치과의사]]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자기 마음이 있는 한 행복은 너무나 막연하다. 그 마음이 참으로 내려놓아질 때 찾아지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거울 보기를 두렵지 않게 해준 이 마음수련은, 진정한 행복과 자유의 시작이라고.
 
  
= 대인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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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씨의 꿈은 늘 “자유로운 삶”이었다. 치과의사가 되고 학회와 봉사 활동으로 인정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무감은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고, 치대 시절의 치열한 경쟁과 개원 후 커지는 부담감은 쇠사슬처럼 마음을 옥죄었다.
'''처세술 책 백 권보다 나은 대인관계 노하우'''(장혜정 / 컴퓨터 프로그래머)
 
  
("혜정씨는 인기가 많아서 좋겠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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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던 어느 날 시작한 마음수련은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나”란 좁은 의식 속에서 발버둥 치던 모습을 돌아보며, 자존심·명예·욕심 같은 마음들을 하나씩 버려갔다. 그러자 “나를 짓누르던 쇠사슬이 풀려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진정한 자유란 내가 없을 때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전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사람은 내가 노력을 해야만 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도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나로서는 놀라운 변화였다.)
 
  
''- 부담스러운 숙제 같았던 인간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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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가식이나 분별 없이 환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며 진심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고, 환자들도 입소문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는 진짜 삶의 의미를 아는 데 있다. 남보다 잘나가는 게 행복이 아니라, 지금 옆의 이웃과 따뜻한 밥과 체온을 나누는 것, 그 소소한 행복 속에 진짜 자유가 있다.”
  
그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마음수련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남자친구며 여러 인간관계가 생각처럼 되지 않아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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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을 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20대 후반경에는 아예 그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회사생활 잘하는 방법, 상사한테 인정받는 방법 등등....
 
그런 책들에서는 기술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할 땐 얼마 만에 한 번씩 맞장구를 쳐줘라, 생일을 기억해 놨다가 카드를 보내라 등등의 지침을 챙기기 위해 더 분주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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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 위해 꼭 해야 할 일, 명상 그리고 마음수련'''(신지혜 / 오보에 연주자)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예전엔 사람들 사이엔 의무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라면, 선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시키다 보니 상대도 부담스러워했다. 누구와도 안전된 관계는 이어지질 않았고, 나는 조급했다. 인간관계란 내가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유지되는 부담스런 숙제 같았다.
 
  
''- 인간관계 잘하는 방법, 그 열쇠를 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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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기 7.jpg|400px|프레임없음|중앙|마음수련 후기 사진입니다.]]
  
수련을 하면서 내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요령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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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씨는 독일 유학을 다녀온 오보에 연주자로, 여러 오케스트라와 대학에서 활동 중이다. 지도교수는 그녀를 두고 “음악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늘 평상심을 유지한다”고 평했는데, 그녀는 그 힘이 바로 마음수련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았다. 모든 인연은 다 순리대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인데, 모두 다 내 기준에 맞추려고 억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주위 사람들도 변화된 나에 대해 호감과 신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마음수련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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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음악을 해왔지만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었고, 무대에 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은 적었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았고, 오보에 특성상 마음이 흔들리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다. 대학 2학년 때 시작한 마음수련은 그런 그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한 일주일만 해보자” 했던 수련이 마음을 비우면서 체한 증상도 사라지고, 연주 실력까지 향상되자 계속 이어졌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고,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내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안 하면 정말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을 못하고 산다.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려주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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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시절 주눅 들고 힘들 때는 파리 수련원이 큰 힘이 되었다. 그곳에서 쌓인 마음을 버리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특히 오보에에 대한 집착을 직면했다. “오보에가 나 자체라서 인정받기 위해 잘해야 하고, 못하면 괴롭다”는 집착이 나를 구속한다는 걸 깨닫고, 몇 날 며칠을 치열하게 버렸다. 그리고 “음악, 명예, 사랑… 다 내려놓았을 때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세술 100권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일, 인간관계를 여는 간단한 열쇠 하나가 내 입장을 버리고 세상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를 버리면 누구에게나 맞는 만능 열쇠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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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연주는 완전히 달라졌다. 관객의 평가에 집착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고, 같은 악보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진짜 아무것도 없어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처럼, 잡념이 사라지자 집중력과 표현력이 극대화됐다.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 후 변화된 대인관계''' (강윤숙 /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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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한다. “좋은 음악을 위해서라도 꼭 비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음악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니까요. 저도 마음 없는 진짜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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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던 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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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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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술 책 백 권보다 나은 대인관계 노하우'''(장혜정 / 컴퓨터 프로그래머)
  
나 혼자만 잘나, 친구들도 무시했었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많지 않았다. 친구들도 착한 얼굴로 앉아 속으로는 자신을 무시하던 나의 마음을 알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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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씨는 인기가 많아서 좋겠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 같애.
사실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칭찬받고, 선생님께 칭찬받고, 부모님에게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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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전에는 한 번도 상상 못했던 변화였다.
  
대학 때도 친구들보다 인생을 깊이 있게 살고 있고, 진실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중학교 선생님이 되어서도 그랬다.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생각하는 ‘바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더더욱 나와 성향이 다른 선생님들과 마찰이 많았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항상 그분들은 불편해했고, 서로 불만이 많다는 걸 느꼈다. 학생들이 내 진실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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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인간관계는 늘 부담스러운 숙제 같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 맞장구 치고, 생일 챙기고, 상사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익히려 애썼지만, 관계가 나아지진 않았다. 오히려 ‘친구라면, 선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내 기준 때문에 상대가 부담스러워했고, 안정된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항상 잘났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던 나였기에 결혼생활도 무척 힘들었다. 나에게 부조리한 많은 걸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어머니와 나와 진실된 삶을, 평등한 삶을 살자고 약속했던 남편이 그 언저리에 가지도, 가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여 짜증 났다. 짜증은 우리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어느 날 “엄마, 나에게 소리 지르지 마. 무서워!”라고 큰딸이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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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시작한 마음수련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수련하며 알게 된 건, 내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억지로 요령을 부리며 내 기준대로만 맞추려 했던 것이다. 마음을 비우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고, 6개월쯤 지나자 주위 사람들도 변화된 나를 신뢰하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 - 마음 버리자 비로소 보인 남편, 시어머니의 원래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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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한다. 인간관계 잘하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고, 내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으면 된다.” 처세술 100권보다 더 강력한 열쇠는 내 입장을 버리고 세상의 입장이 되는 것, 바로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동료 교사의 소개로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를 했다. 여러 날, 내 인생,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깊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내 마음과 씨름하면서, 그 마음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려나갔다.
 
그러면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가족, 남편, 딸들, 시댁 식구들, 친구들, 학생들, 선생님들에게 정말 ‘잘못했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를 한 사람들과의 부딪침이 점점 줄었다. 매일 저녁, 그날의 나를 돌아보면서 마음을 버렸다. 지금은 매 순간 그 마음들을 버린다. 어느 사이엔가 산다는 것이, 인생이 너무나 즐겁고 기뻤다. 집에서 가족들과 있으면 가족들과 있어서 행복하고 좋다. 학교에 오면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얘기하고 떠들며 하루가 즐겁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나 생각해 봤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에 대한 ‘바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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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 변화된 대인관계''' (강윤숙 /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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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학생들에게, 주위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았다. 다 내 입장에서 좋은 것,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음을 버리고 본 남편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입장보다 나를 더 생각해 주는 정말 ‘착한 남편’이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고생하지 않도록 자신이 대부분을 희생하시는 헌신적인 분이셨다. 아이들은 내 인생의 행복함을 같이 즐기라고 하늘이 보내준 동락자(同樂者)였다. 더 이상 내가 옳은 것을 교육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 내가 달라진 걸까? 아이들이 달라진 걸까? -''
 
  
예전엔 학년 부장님과 자주 부딪쳤다. 교육적이지 않은 많은 것들을 나에게 강요한다고 여겼다. 주위 선생님들도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가 없이 불편했다. 지금 나는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의 팬이다. 참 열심히 살며 교육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 선생님들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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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숙 교사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무시했고, 교사가 된 후에도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해 동료들과 마찰이 잦았다. 결혼생활 역시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부조리하게만 보였고, 남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듯 답답했다. 결국 짜증은 아이들에게 향했고, 큰딸에게서 “엄마, 나에게 소리 지르지 마. 무서워!”라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아침 독서시간. 책을 읽다가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 아이들은 참으로 마음을 잘 연다. 내가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나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기다린다. 그리고는 곧 나와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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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동료 교사의 권유로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삶과 마음을 깊이 돌아보며 반성했고, 가족·친구·학생들에게 “잘못했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하나씩 버려갔다. 이후로는 사람들과의 부딪침이 줄고, 매일 버림을 실천하면서 삶이 즐겁고 감사해졌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바람’이 줄자, 남편은 “착한 남편”, 시어머니는 헌신적인 분, 아이들은 인생을 함께 즐기라고 하늘이 보낸 ‘동락자’로 보였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주길 바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예전에 나는 학생의 장점보다 단점을 훨씬 많이 알고 있는 교사였다. 내 교실에는 장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학생들만 있었다. 내가 달라진 걸까, 학생들이 달라진 걸까. 답은 너무나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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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달라졌다. 예전엔 학년 부장과 자주 부딪쳤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의 팬”이라며 존경과 즐거움을 느낀다. 학생들 또한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왔고, 자신이 변하자 단점만 보이던 교실이 장점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난 지금 단점보다 장점을 훨씬 많이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게 됐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원래부터 아름다운 인연으로 내 옆에 있었다. 그것을 알게 해준 마음수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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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원래부터 아름다운 인연이었고, 그걸 알게 해준 건 마음수련이었다.

2025년 9월 27일 (토) 20:01 기준 최신판


개요

마음이 더 여유로워졌다, 들끓던 잡생각이 끊겼다, 직장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대인관계가 편안해졌다, 나를 알게 됐다, 불면증이 해결됐다, 아이들 남편과 마주 보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분들이 느끼고 있는 효과는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차츰차츰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명상이 있습니다만, 마음수련은 오직 마음에만 집중한 마음 전문 명상입니다. 일주일만 경험해도 참가자들에게 많은 효과를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 부부관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30년 차 신혼부부

결혼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신혼처럼 지낸다는 정기언·서희순 부부. 예전에는 대화가 거의 없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태도에 아내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정기언 씨가 마음수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굳었던 얼굴이 풀리고 아이들과 장난칠 정도로 변했다.

“고정관념과 생각을 버리고 나니 아내 입장이 보이더라”며 그는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집안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엇보다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고 들어주게 되었다. 아내 역시 수련을 통해 “나도 내 입장에서만 판단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마음수련이 아니었다면 황혼이혼을 맞이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삶의 동반자로서 진정한 신뢰와 따뜻함을 나눈다. “이해한다는 건 상대보다 아래에 선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처럼, 나를 내려놓고 낮은 마음이 될 때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울증 극복한 나는 행복한 엄마, 아내입니다(김지영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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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결혼 후, 아이들과 살림에 매여 자유도 사라지고 남편은 바쁘기만 해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차라리 엄마가 없는 게 낫겠다”는 아이의 말에 충격을 받고, 결국 마음수련 메인센터를 찾았다.

절박한 마음으로 수련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과거에 살고, 남편은 미래에 살며 한 번도 같은 시간을 산 적이 없었다는 것. 가족을 진정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인정하자 눈물이 쏟아졌고, 남편과 아이들을 묶어두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남편이 얼마나 애써왔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잘 커준 건지 감사가 밀려왔다. 마음이 잔잔해지자 남편도 함께 변했고, 우리는 드디어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당신 덕분에 한마음으로 살게 돼 감사하다”는 남편의 말에 또다시 고마움이 차올랐다.

거울 속 무표정 대신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한다. 조건 없는 감사 속에서, 이제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엄마이자 아내다.

자녀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집착을 내려놓은 사례 나의 집착을 내려 놓으면 아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건강

비로소 마음이 쉽니다 (구선애 / 서울 동작구)

마음수련 후기사진


몸도 마음도 아팠던 시절, 남편과 딸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수련은 제게 기적 같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괴로워하시는 시어머님을 보며 ‘그 모습이 곧 내 미래’라 느꼈던 저는, 명상을 통해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집착과 책임의 짐을 내려놓다 - 오랜 투병 속에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역할을 다 못한다”는 자책으로 가득했던 제 마음. 인정받고자 뭐든 열심히 하던 집착이 결국 몸까지 굽게 만들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수련을 통해 그 마음을 버리자, 병에 대한 두려움과 힘든 생각들이 사라지고 자유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 비로소 마음이 쉽니다 - “있어야 한다”는 기준과 시비의 틀을 놓으니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따뜻한 대화와 행복한 소통이 이어졌습니다. 바람과 집착을 풍선처럼 날려 보내자 홀가분했고, 그것은 잃음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병든 몸이 아닌 본래의 나로 서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아무 일도 없는 고요가 아니라, 내 마음이 사라져 쉬게 될 때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지내던 제가 두 발로 서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지금, 함께해 준 가족과 인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갑상선암, 고비 넘기고 진짜 삶 살다 (김영애 / 보건교사)

마음수련 후기사진

2005년, 갑상선암 수술 후 목소리까지 잃자 “내 마음인데도 왜 조절이 안 될까” 절망하며 일기에 눈물만 흘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아”라며 밝은 척했지만, 속은 열등감과 분노로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마음수련을 하며 처음으로 내 내면과 정직하게 마주했다. “행복한 척, 긍정적인 척” 포장만 해온 삶, 언니와 비교하며 쌓아온 열등감, 인정받고자 쌓아올린 자존심이 결국 병이 되어 있었다. 세포 구석구석 끼어 있던 묵은 마음을 버릴 때, 막혀 있던 돌덩이가 빠져나가는 듯했고, 기적처럼 사라졌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살도 빠지고 체력도 회복되어 합창단에서 노래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병에서 벗어나려면 병에 대한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몸은 고장 나면 고쳐 쓰는 도구일 뿐, 진짜 나는 마음을 버리고 드러나는 본래의 존재였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살고 싶다”던 꿈, 마음수련을 통해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암은 오히려 나를 진짜 삶으로 이끈 선물이었다.

행복,삶의의미

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임재현 / 화성시 남양동)

마음수련 후기 사진

어릴 적 할머니·할아버지와 지내다 부모님 품으로 오게 된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 공부와 성적 집착 속에서 부모님을 원망했고,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장래희망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쓸 만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깊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 복무와 유학으로도 해답을 찾지 못하던 중, 미국에서 《연금술사》를 토론하다 “가장 소중한 건 내 안에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계기로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성적·인정·열등감 등을 돌아보고 버렸지만 가장 큰 숙제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그 마음조차 버릴 수 있었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몰랐다”는 부모님의 고백을 들으며, 쌓아둔 가짜 마음을 내려놓자 처음으로 자유로움과 이해가 찾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삶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었고, 장래희망이었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진짜로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허무함 대신 감사와 화해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혼란의 인생에서 즐거운 인생으로(송명근 / 강서구 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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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난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삶은 혼란에 빠졌다. 무기력과 불안 속에 억지로 취업했지만 직장생활은 지옥 같았고, 결국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음수련을 찾았다.

명상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어릴 적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애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칭찬을 받기 위해 눈치 보고, 착한 척하며 살았던 모습은 결국 열등감의 가면이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늘 부정을 가득 안고 있던 나였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 그 마음들을 하나하나 버리자, 가짜였던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삶의 막연한 불안이 사라지고, 억지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혼란 대신 내일이 기대되는 즐거운 삶을 살며,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

스트레스

마음수련원 에서 찾은, 트라우마 극복하는 비법! (장학수 / 소방관)

장학수/소방관

장학수 소방관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사고 등 위급한 현장을 지키며 수많은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처음 죽음을 접한 뒤, 추락사·자살·사고 현장들이 머릿속에 깊게 남아 늘 괴롭고, 악몽과 가위눌림, 수면장애까지 겪었다.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직을 고민하던 그는 마음수련을 만나 논산 메인센터에 들어갔다.

처음엔 끔찍한 기억을 떠올려 버리는 게 힘들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버려나가자 신기하게도 사흘 만에 머리만 대면 곧바로 잠들 수 있었다. 수면장애가 사라지고, 출동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이제는 하루에 10건 넘는 사고도 담담히 처리하며 마음의 평온 속에 진정한 휴식을 얻었다.

그는 말한다. “소방관, 경찰관 같은 직종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집을 리모델링하듯 마음도 한 번쯤 리모델링했으면 합니다.”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오직 필요한 곳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다.


잘나갔던 프로댄서의 선택 (이항우 / 안산시 상록구)

마음수련 후기 사진


인순이·김완선·민해경·김건모·신승훈·이승철 등 TV를 휩쓴 가수들 뒤에서 춤추던 그는 우리나라 최정상의 댄스팀을 꾸린 ‘잘나가는 댄서’였다. 하루 두세 개씩 방송을 소화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시작은 내성적이던 대학 시절 축제 무대였다. AFKN 방송과 ‘Grease’를 따라추며 연습에 빠져들었고, 칭찬과 환호 속에 “나를 인정받게 해준 춤”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디스코 대회에서 상금과 상품을 휩쓸던 그는 인순이 매니저의 제안으로 국내 첫 남자 프로댄서가 됐다.

이후 김완선 ‘오늘밤’ ‘리듬 속의 그 춤을’부터 여러 가수 안무 요청이 쇄도했고, KBS ‘젊음의 행진’ 전속 안무까지 맡으며 50명 규모의 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세대 변화로 팀을 유지하지 못하고 10년 넘게 몸담았던 무대를 떠났다. 자영업으로 돈을 모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아쉬움과 허함, 술로 지친 몸과 마음이 남았다. 그때 조카의 권유로 논산 메인센터 마음수련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쉬러 왔는데 잘못 왔나’ 싶었지만, 시키는 대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 중심적인 입장에 빠져 있을 땐 몰랐던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시기·질투·멸시, 트렌드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내가 왜 망했는지 알았고, 마음을 한 겹 한 겹 빼니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휴식을 느꼈다. 스트레스성 알러지 약도 끊었다.

지금은 논산 메인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며 ‘잘 춘다 못 춘다’는 마음 없이 함께 춤을 추는 즐거움을 맛본다. “가짜마음 속에 살면 지옥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진짜마음으로 살면 천국”임을 깨달았다.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진리,깨달음

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오세천 /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마음수련 후기 사진


"내가 너를 보면 무섭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하신 이 말은, 전쟁 중에도 악착같이 농사일을 도맡던 나를 보고 놀랍고 안쓰러워 하신 마음이었을 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조차 지우려 했던 아이가 끈질기게 태어나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도맡으니 그랬으리라.

나는 부유한 농가의 일곱째였지만, 남들 대신 부지런히 일했다. 새벽에 교회 종을 치고, 들일을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또 농사. 내가 손댄 농사는 언제나 풍년이었고, 고철을 모으거나 담배·고구마 농사를 지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했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기술사 시험에도 단번에 합격, 건설공무원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가정도 화목했고 아이들 역시 바르게 자라주었다.

삶이 늘 순탄했던 이유는 60세에 접한 마음수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삶이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살아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태중에서 죽을 뻔한 경험, 물에 빠져 떠내려간 경험처럼 죽음을 마주했던 순간들이 내 삶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모두가 하나 되어 사는 비결은 자기 마음 버리기"다. 마음을 비우면 내 주장보다 상대를 존중하게 되고, 삶은 순리대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흘러간다. 나는 그 은혜를 알고, 마음을 비운 덕에 더욱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그 답을 찾다(미하이 미할치욱 / 루마니아 출신, 호주 퍼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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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이 질문은 부모님도, 교회도, 책도, 세계 곳곳의 영적 스승들도 답을 주지 못했다. 돈과 명예, 쾌락으로 채워보려 했지만 내면은 늘 공허했고, 삶은 불완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퍼스 마음수련 센터에서 "버리면 스스로 답을 알게 된다"는 말을 듣고 수련을 시작했다. 방법은 단순했고, 2주 만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되는 기적 같은 경험을 했다. 1~7과정을 거치며 삶과 죽음, 존재의 모든 질문에 답을 얻었고, 좁은 인간마음 대신 무한한 우주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스트레스 대신 행복만 가득하다." 감옥 같던 인간마음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영원한 안정을 찾았다. 돈과 명예도 대신할 수 없는 진짜 행복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남긴 ‘빈손의 교훈’을 떠올리며, 진정한 정복은 세상을 가로막는 거짓된 마음을 버려 참세상을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방법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처럼 당신도 우주마음을 회복해 한마음으로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감,열등감

훈남 서울대생의 콤플렉스 극복기, 마음수련 명상 효과(박강우 / 대학생)

마음수련 후기 사진

고3 때 살이 급격히 쪄서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대에 입학해 20kg을 감량했지만, 불안과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살이 쪄도 강박적으로 운동했고, 멋지게 꾸미지 않으면 집 밖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외모에 집착했다.

그러던 중 대학생 마음수련 캠프를 통해 그동안 감춰왔던 콤플렉스를 하나하나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과 나 사이의 벽이 사라지고 콤플렉스란 애초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꾸미지 않아도 당당해졌다. 친구들 앞에서 콤플렉스를 솔직히 털어놓자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는 말을 들었다. “가짜는 끊임없이 치장하지만, 진짜는 꾸미지 않아도 빛난다”는 말처럼, 이제는 허상의 삶이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아, 이제 다른 선택을 해보자(김경미 /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마음수련 후기 사진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 씨는 매일 학교폭력, 절도 사건 등으로 법원을 찾는 청소년들을 상담한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왜 나만 벌을 받아야 하냐”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는 “나는 네 부모도, 선생님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며 변화를 이끌어낸다.

처음엔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 내 잣대로 판단하려 했지만, 대학원 시절 접한 마음수련을 통해 달라졌다. 삶에서 쌓인 마음을 버리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4과정에서는 “모두와 하나” 되는 체험을 하며 상담에 대한 고민도 풀렸다.

이제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선택하며 사는데,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 작은 상담과 이해만으로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 가장 보람되다. 김경미 씨는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마음 빼기를 이어간다.

우울증,불면증

우울증 극복,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마리아 트레이시 /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주)

슬로바키아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나는 미국 드라마 속 ‘행복한 삶’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하지만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혼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한 뒤 항우울제를 먹었지만 “좀비가 된 것 같다”는 느낌뿐, 감정을 전혀 조절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마음수련 책자를 발견했고, 남편과 함께 시작했다. 한 달만 해보자 했던 수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마음수련은 정말 기적이다. 슬픔, 외로움, 화, 우울증이 점차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남편과의 갈등도 금방 풀 수 있고, 가족에 대한 따뜻함과 감사가 커졌다. “내 삶은 꽃봉오리가 만개한 것 같다.” 힘든 순간 속 길을 잃은 누구라도, 나처럼 마음수련을 통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다 (최심진 /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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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내 모습은 늘 경직되고 어두워 보기 싫었다. 웃고 싶어도 마음속 우울과 불안이 얼굴에 드러났고,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가 원망이 앞섰다. 세상은 늘 창밖에서 바라보는 남의 이야기 같았다. 그러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아이에게 이런 우울한 마음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깨달은 건 우울의 원인은 엄마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오빠와 비교·질책 속에 자라며 형성된 열등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쌓인 공포와 상처, 엄마에 대한 원망을 하나하나 버리자 마음이 가벼워지고 이해와 감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바뀌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딸 역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마음을 비워야 진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나는, 이제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공황장애,강박증

‘공황장애’가 사라지다(고권호/ KT 네트웍스근무)

마음수련 후기 사진

업무 스트레스와 열등감에 시달리던 고권호 씨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불안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약도 먹어봤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죽는구나” 싶을 만큼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동료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수련. 그는 “나는 여리다, 소심하다”라는 기억과 상처, 부모에 대한 원망까지 하나하나 버려나갔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자 서류 한 장,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위축되던 예전의 자신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죽어라고 마음 빼기만 했을 뿐인데, 공황장애가 밤손님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이후 직장생활도 달라졌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넓어지고 편안해졌다. 모임도 주도할 만큼 적극적으로 변한 그는 말한다. “세상은 내 마음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다. 힘들다면 내 마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 애가 ‘과잉행동장애’라구요?(최영미 / 주부)

남편과의 잦은 다툼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던 큰아이는 산만해지고 동생에게 난폭해졌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친구 없어도 괜찮아, 나 싫어해도 괜찮아”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병원에서는 음성 틱 증상이라 했고, 4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상담을 권유했다. 결국 소아정신과에서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에게서 부정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설명에 엄마는 “미안하다, 아들아”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무렵 알게 된 마음수련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했던 잘못과 자기중심적이었던 마음을 돌아보며 버리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며 아이의 감정을 억눌렀던 지난날이 참회로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자 아이의 행동도 달리 보였다. 여름방학에는 청소년 캠프에 보내 마음의 자유를 경험하게 했다.

돌아온 아이는 “뭘 그런 얘기를 하냐고, 다 버렸다”며 엄마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또래들과 어울리며 놀았다. 틱 증상도 거의 사라졌고 반장 선거에도 당선되었다. 집으로 친구를 데려오고, 밴드부에서 기타를 배우며 활기차게 생활했다. 어느 날은 “엄마, 내가 세상을 너무 재미없게 산 거 같아, 이젠 재밌게 살 거야”라며 웃어 보였다.

최영미 씨는 말한다. 부모들은 대개 아이가 변하기만을 바라지만, 사실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부모라는 ‘환경’이다. 영어캠프나 해외연수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일이며, 마음수련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업무효율,집중력

내가 태어난 이유, 진짜 삶의 의미를 깨닫다(윤진영 / 치과의사)

윤진영/치과의사

윤진영 씨의 꿈은 늘 “자유로운 삶”이었다. 치과의사가 되고 학회와 봉사 활동으로 인정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무감은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고, 치대 시절의 치열한 경쟁과 개원 후 커지는 부담감은 쇠사슬처럼 마음을 옥죄었다.

지쳐가던 어느 날 시작한 마음수련은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나”란 좁은 의식 속에서 발버둥 치던 모습을 돌아보며, 자존심·명예·욕심 같은 마음들을 하나씩 버려갔다. 그러자 “나를 짓누르던 쇠사슬이 풀려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진정한 자유란 내가 없을 때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가식이나 분별 없이 환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며 진심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고, 환자들도 입소문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는 진짜 삶의 의미를 아는 데 있다. 남보다 잘나가는 게 행복이 아니라, 지금 옆의 이웃과 따뜻한 밥과 체온을 나누는 것, 그 소소한 행복 속에 진짜 자유가 있다.”


좋은 음악 위해 꼭 해야 할 일, 명상 그리고 마음수련(신지혜 / 오보에 연주자)

마음수련 후기 사진입니다.

신지혜 씨는 독일 유학을 다녀온 오보에 연주자로, 여러 오케스트라와 대학에서 활동 중이다. 지도교수는 그녀를 두고 “음악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늘 평상심을 유지한다”고 평했는데, 그녀는 그 힘이 바로 마음수련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해왔지만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었고, 무대에 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은 적었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았고, 오보에 특성상 마음이 흔들리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다. 대학 2학년 때 시작한 마음수련은 그런 그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한 일주일만 해보자” 했던 수련이 마음을 비우면서 체한 증상도 사라지고, 연주 실력까지 향상되자 계속 이어졌다.

독일 유학 시절 주눅 들고 힘들 때는 파리 수련원이 큰 힘이 되었다. 그곳에서 쌓인 마음을 버리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특히 오보에에 대한 집착을 직면했다. “오보에가 나 자체라서 인정받기 위해 잘해야 하고, 못하면 괴롭다”는 집착이 나를 구속한다는 걸 깨닫고, 몇 날 며칠을 치열하게 버렸다. 그리고 “음악, 명예, 사랑… 다 내려놓았을 때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연주는 완전히 달라졌다. 관객의 평가에 집착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고, 같은 악보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진짜 아무것도 없어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처럼, 잡념이 사라지자 집중력과 표현력이 극대화됐다.

그녀는 말한다. “좋은 음악을 위해서라도 꼭 비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음악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니까요. 저도 마음 없는 진짜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대인관계

처세술 책 백 권보다 나은 대인관계 노하우(장혜정 / 컴퓨터 프로그래머)

“혜정씨는 인기가 많아서 좋겠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 같애.” 언제부턴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전에는 한 번도 상상 못했던 변화였다.

예전의 인간관계는 늘 부담스러운 숙제 같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 맞장구 치고, 생일 챙기고, 상사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익히려 애썼지만, 관계가 더 나아지진 않았다. 오히려 ‘친구라면, 선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내 기준 때문에 상대가 부담스러워했고, 안정된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시작한 마음수련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수련하며 알게 된 건, 내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억지로 요령을 부리며 내 기준대로만 맞추려 했던 것이다. 마음을 비우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고, 6개월쯤 지나자 주위 사람들도 변화된 나를 신뢰하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한다. 인간관계 잘하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고, 내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으면 된다.” 처세술 100권보다 더 강력한 열쇠는 내 입장을 버리고 세상의 입장이 되는 것, 바로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 후 변화된 대인관계 (강윤숙 /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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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숙 교사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무시했고, 교사가 된 후에도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해 동료들과 마찰이 잦았다. 결혼생활 역시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부조리하게만 보였고, 남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듯 답답했다. 결국 그 짜증은 아이들에게 향했고, 큰딸에게서 “엄마, 나에게 소리 지르지 마. 무서워!”라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동료 교사의 권유로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삶과 마음을 깊이 돌아보며 반성했고, 가족·친구·학생들에게 “잘못했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하나씩 버려갔다. 이후로는 사람들과의 부딪침이 줄고, 매일 버림을 실천하면서 삶이 즐겁고 감사해졌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바람’이 줄자, 남편은 “착한 남편”, 시어머니는 헌신적인 분, 아이들은 인생을 함께 즐기라고 하늘이 보낸 ‘동락자’로 보였다.

학교에서도 달라졌다. 예전엔 학년 부장과 자주 부딪쳤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의 팬”이라며 존경과 즐거움을 느낀다. 학생들 또한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왔고, 자신이 변하자 단점만 보이던 교실이 장점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말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원래부터 아름다운 인연이었고, 그걸 알게 해준 건 마음수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