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후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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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인생에서 즐거운 인생으로'''(송명근 / 강서구 화곡동)
 
'''혼란의 인생에서 즐거운 인생으로'''(송명근 / 강서구 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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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난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삶은 혼란에 빠졌다. 무기력과 불안 속에 억지로 취업했지만 직장생활은 지옥 같았고, 결국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음수련을 찾았다.
 
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난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삶은 혼란에 빠졌다. 무기력과 불안 속에 억지로 취업했지만 직장생활은 지옥 같았고, 결국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음수련을 찾았다.

2025년 9월 27일 (토) 20:00 판


개요

마음이 더 여유로워졌다, 들끓던 잡생각이 끊겼다, 직장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대인관계가 편안해졌다, 나를 알게 됐다, 불면증이 해결됐다, 아이들 남편과 마주 보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분들이 느끼고 있는 효과는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차츰차츰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명상이 있습니다만, 마음수련은 오직 마음에만 집중한 마음 전문 명상입니다. 일주일만 경험해도 참가자들에게 많은 효과를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 부부관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30년 차 신혼부부

결혼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신혼처럼 지낸다는 정기언·서희순 부부. 예전에는 대화가 거의 없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태도에 아내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정기언 씨가 마음수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굳었던 얼굴이 풀리고 아이들과 장난칠 정도로 변했다.

“고정관념과 생각을 버리고 나니 아내 입장이 보이더라”며 그는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집안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엇보다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고 들어주게 되었다. 아내 역시 수련을 통해 “나도 내 입장에서만 판단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마음수련이 아니었다면 황혼이혼을 맞이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삶의 동반자로서 진정한 신뢰와 따뜻함을 나눈다. “이해한다는 건 상대보다 아래에 선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처럼, 나를 내려놓고 낮은 마음이 될 때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울증 극복한 나는 행복한 엄마, 아내입니다(김지영 / 주부)

화면 캡처 2021-05-05 104646.png


20년 전 결혼 후, 아이들과 살림에 매여 자유도 사라지고 남편은 바쁘기만 해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차라리 엄마가 없는 게 낫겠다”는 아이의 말에 충격을 받고, 결국 마음수련 메인센터를 찾았다.

절박한 마음으로 수련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과거에 살고, 남편은 미래에 살며 한 번도 같은 시간을 산 적이 없었다는 것. 가족을 진정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인정하자 눈물이 쏟아졌고, 남편과 아이들을 묶어두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남편이 얼마나 애써왔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잘 커준 건지 감사가 밀려왔다. 마음이 잔잔해지자 남편도 함께 변했고, 우리는 드디어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당신 덕분에 한마음으로 살게 돼 감사하다”는 남편의 말에 또다시 고마움이 차올랐다.

거울 속 무표정 대신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한다. 조건 없는 감사 속에서, 이제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엄마이자 아내다.

자녀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집착을 내려놓은 사례 나의 집착을 내려 놓으면 아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건강

비로소 마음이 쉽니다 (구선애 / 서울 동작구)

마음수련 후기사진


몸도 마음도 아팠던 시절, 남편과 딸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수련은 제게 기적 같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괴로워하시는 시어머님을 보며 ‘그 모습이 곧 내 미래’라 느꼈던 저는, 명상을 통해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집착과 책임의 짐을 내려놓다 - 오랜 투병 속에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역할을 다 못한다”는 자책으로 가득했던 제 마음. 인정받고자 뭐든 열심히 하던 집착이 결국 몸까지 굽게 만들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수련을 통해 그 마음을 버리자, 병에 대한 두려움과 힘든 생각들이 사라지고 자유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 비로소 마음이 쉽니다 - “있어야 한다”는 기준과 시비의 틀을 놓으니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따뜻한 대화와 행복한 소통이 이어졌습니다. 바람과 집착을 풍선처럼 날려 보내자 홀가분했고, 그것은 잃음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병든 몸이 아닌 본래의 나로 서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아무 일도 없는 고요가 아니라, 내 마음이 사라져 쉬게 될 때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지내던 제가 두 발로 서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지금, 함께해 준 가족과 인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갑상선암, 고비 넘기고 진짜 삶 살다 (김영애 / 보건교사)

마음수련 후기사진

2005년, 갑상선암 수술 후 목소리까지 잃자 “내 마음인데도 왜 조절이 안 될까” 절망하며 일기에 눈물만 흘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아”라며 밝은 척했지만, 속은 열등감과 분노로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마음수련을 하며 처음으로 내 내면과 정직하게 마주했다. “행복한 척, 긍정적인 척” 포장만 해온 삶, 언니와 비교하며 쌓아온 열등감, 인정받고자 쌓아올린 자존심이 결국 병이 되어 있었다. 세포 구석구석 끼어 있던 묵은 마음을 버릴 때, 막혀 있던 돌덩이가 빠져나가는 듯했고, 기적처럼 사라졌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살도 빠지고 체력도 회복되어 합창단에서 노래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병에서 벗어나려면 병에 대한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몸은 고장 나면 고쳐 쓰는 도구일 뿐, 진짜 나는 마음을 버리고 드러나는 본래의 존재였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살고 싶다”던 꿈, 마음수련을 통해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암은 오히려 나를 진짜 삶으로 이끈 선물이었다.

행복,삶의의미

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임재현 / 화성시 남양동)

마음수련 후기 사진

어릴 적 할머니·할아버지와 지내다 부모님 품으로 오게 된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 공부와 성적 집착 속에서 부모님을 원망했고,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장래희망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쓸 만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깊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 복무와 유학으로도 해답을 찾지 못하던 중, 미국에서 《연금술사》를 토론하다 “가장 소중한 건 내 안에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계기로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성적·인정·열등감 등을 돌아보고 버렸지만 가장 큰 숙제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그 마음조차 버릴 수 있었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몰랐다”는 부모님의 고백을 들으며, 쌓아둔 가짜 마음을 내려놓자 처음으로 자유로움과 이해가 찾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삶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었고, 장래희망이었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진짜로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허무함 대신 감사와 화해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혼란의 인생에서 즐거운 인생으로(송명근 / 강서구 화곡동)

화면 캡처 2021-05-05 104355.png

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난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삶은 혼란에 빠졌다. 무기력과 불안 속에 억지로 취업했지만 직장생활은 지옥 같았고, 결국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음수련을 찾았다.

명상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어릴 적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애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칭찬을 받기 위해 눈치 보고, 착한 척하며 살았던 모습은 결국 열등감의 가면이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늘 부정을 가득 안고 있던 나였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 그 마음들을 하나하나 버리자, 가짜였던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삶의 막연한 불안이 사라지고, 억지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혼란 대신 내일이 기대되는 즐거운 삶을 살며,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

스트레스

마음수련원 에서 찾은, 트라우마 극복하는 비법! (장학수 / 소방관)

장학수/소방관

장학수 소방관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사고 등 위급한 현장을 지키며 수많은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처음 죽음을 접한 뒤, 추락사·자살·사고 현장들이 머릿속에 깊게 남아 늘 괴롭고, 악몽과 가위눌림, 수면장애까지 겪었다.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직을 고민하던 그는 마음수련을 만나 논산 메인센터에 들어갔다.

처음엔 끔찍한 기억을 떠올려 버리는 게 힘들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버려나가자 신기하게도 사흘 만에 머리만 대면 곧바로 잠들 수 있었다. 수면장애가 사라지고, 출동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이제는 하루에 10건 넘는 사고도 담담히 처리하며 마음의 평온 속에 진정한 휴식을 얻었다.

그는 말한다. “소방관, 경찰관 같은 직종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집을 리모델링하듯 마음도 한 번쯤 리모델링했으면 합니다.”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오직 필요한 곳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다.


잘나갔던 프로댄서의 선택 (이항우 / 안산시 상록구)

마음수련 후기 사진


인순이·김완선·민해경·김건모·신승훈·이승철 등 TV를 휩쓴 가수들 뒤에서 춤추던 그는 우리나라 최정상의 댄스팀을 꾸린 ‘잘나가는 댄서’였다. 하루 두세 개씩 방송을 소화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시작은 내성적이던 대학 시절 축제 무대였다. AFKN 방송과 ‘Grease’를 따라추며 연습에 빠져들었고, 칭찬과 환호 속에 “나를 인정받게 해준 춤”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디스코 대회에서 상금과 상품을 휩쓸던 그는 인순이 매니저의 제안으로 국내 첫 남자 프로댄서가 됐다.

이후 김완선 ‘오늘밤’ ‘리듬 속의 그 춤을’부터 여러 가수 안무 요청이 쇄도했고, KBS ‘젊음의 행진’ 전속 안무까지 맡으며 50명 규모의 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세대 변화로 팀을 유지하지 못하고 10년 넘게 몸담았던 무대를 떠났다. 자영업으로 돈을 모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아쉬움과 허함, 술로 지친 몸과 마음이 남았다. 그때 조카의 권유로 논산 메인센터 마음수련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쉬러 왔는데 잘못 왔나’ 싶었지만, 시키는 대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 중심적인 입장에 빠져 있을 땐 몰랐던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시기·질투·멸시, 트렌드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내가 왜 망했는지 알았고, 마음을 한 겹 한 겹 빼니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휴식을 느꼈다. 스트레스성 알러지 약도 끊었다.

지금은 논산 메인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며 ‘잘 춘다 못 춘다’는 마음 없이 함께 춤을 추는 즐거움을 맛본다. “가짜마음 속에 살면 지옥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진짜마음으로 살면 천국”임을 깨달았다.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진리,깨달음

마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오세천 /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마음수련 후기 사진


"내가 너를 보면 무섭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하신 이 말은, 전쟁 중에도 악착같이 농사일을 도맡던 나를 보고 놀랍고 안쓰러워 하신 마음이었을 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조차 지우려 했던 아이가 끈질기게 태어나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도맡으니 그랬으리라.

나는 부유한 농가의 일곱째였지만, 남들 대신 부지런히 일했다. 새벽에 교회 종을 치고, 들일을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또 농사. 내가 손댄 농사는 언제나 풍년이었고, 고철을 모으거나 담배·고구마 농사를 지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했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기술사 시험에도 단번에 합격, 건설공무원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가정도 화목했고 아이들 역시 바르게 자라주었다.

삶이 늘 순탄했던 이유는 60세에 접한 마음수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삶이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살아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태중에서 죽을 뻔한 경험, 물에 빠져 떠내려간 경험처럼 죽음을 마주했던 순간들이 내 삶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모두가 하나 되어 사는 비결은 자기 마음 버리기"다. 마음을 비우면 내 주장보다 상대를 존중하게 되고, 삶은 순리대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흘러간다. 나는 그 은혜를 알고, 마음을 비운 덕에 더욱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그 답을 찾다(미하이 미할치욱 / 루마니아 출신, 호주 퍼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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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이 질문은 부모님도, 교회도, 책도, 세계 곳곳의 영적 스승들도 답을 주지 못했다. 돈과 명예, 쾌락으로 채워보려 했지만 내면은 늘 공허했고, 삶은 불완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퍼스 마음수련 센터에서 "버리면 스스로 답을 알게 된다"는 말을 듣고 수련을 시작했다. 방법은 단순했고, 2주 만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되는 기적 같은 경험을 했다. 1~7과정을 거치며 삶과 죽음, 존재의 모든 질문에 답을 얻었고, 좁은 인간마음 대신 무한한 우주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스트레스 대신 행복만 가득하다." 감옥 같던 인간마음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영원한 안정을 찾았다. 돈과 명예도 대신할 수 없는 진짜 행복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남긴 ‘빈손의 교훈’을 떠올리며, 진정한 정복은 세상을 가로막는 거짓된 마음을 버려 참세상을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방법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처럼 당신도 우주마음을 회복해 한마음으로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감,열등감

훈남 서울대생의 콤플렉스 극복기, 마음수련 명상 효과(박강우 / 대학생)

마음수련 후기 사진

고3 때 살이 급격히 쪄서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대에 입학해 20kg을 감량했지만, 불안과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살이 쪄도 강박적으로 운동했고, 멋지게 꾸미지 않으면 집 밖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외모에 집착했다.

그러던 중 대학생 마음수련 캠프를 통해 그동안 감춰왔던 콤플렉스를 하나하나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과 나 사이의 벽이 사라지고 콤플렉스란 애초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꾸미지 않아도 당당해졌다. 친구들 앞에서 콤플렉스를 솔직히 털어놓자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는 말을 들었다. “가짜는 끊임없이 치장하지만, 진짜는 꾸미지 않아도 빛난다”는 말처럼, 이제는 허상의 삶이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아, 이제 다른 선택을 해보자(김경미 /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마음수련 후기 사진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 씨는 매일 학교폭력, 절도 사건 등으로 법원을 찾는 청소년들을 상담한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왜 나만 벌을 받아야 하냐”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는 “나는 네 부모도, 선생님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며 변화를 이끌어낸다.

처음엔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 내 잣대로 판단하려 했지만, 대학원 시절 접한 마음수련을 통해 달라졌다. 삶에서 쌓인 마음을 버리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4과정에서는 “모두와 하나” 되는 체험을 하며 상담에 대한 고민도 풀렸다.

이제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선택하며 사는데,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 작은 상담과 이해만으로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 가장 보람되다. 김경미 씨는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마음 빼기를 이어간다.

우울증,불면증

우울증 극복,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마리아 트레이시 /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주)

슬로바키아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나는 미국 드라마 속 ‘행복한 삶’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하지만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혼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한 뒤 항우울제를 먹었지만 “좀비가 된 것 같다”는 느낌뿐, 감정을 전혀 조절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마음수련 책자를 발견했고, 남편과 함께 시작했다. 한 달만 해보자 했던 수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마음수련은 정말 기적이다. 슬픔, 외로움, 화, 우울증이 점차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남편과의 갈등도 금방 풀 수 있고, 가족에 대한 따뜻함과 감사가 커졌다. “내 삶은 꽃봉오리가 만개한 것 같다.” 힘든 순간 속 길을 잃은 누구라도, 나처럼 마음수련을 통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다 (최심진 /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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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내 모습은 늘 경직되고 어두워 보기 싫었다. 웃고 싶어도 마음속 우울과 불안이 얼굴에 드러났고,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가 원망이 앞섰다. 세상은 늘 창밖에서 바라보는 남의 이야기 같았다. 그러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아이에게 이런 우울한 마음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깨달은 건 우울의 원인은 엄마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오빠와 비교·질책 속에 자라며 형성된 열등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쌓인 공포와 상처, 엄마에 대한 원망을 하나하나 버리자 마음이 가벼워지고 이해와 감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바뀌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딸 역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마음을 비워야 진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나는, 이제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공황장애,강박증

‘공황장애’가 사라지다(고권호/ KT 네트웍스근무)

마음수련 후기 사진

업무 스트레스와 열등감에 시달리던 고권호 씨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불안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약도 먹어봤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죽는구나” 싶을 만큼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동료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수련. 그는 “나는 여리다, 소심하다”라는 기억과 상처, 부모에 대한 원망까지 하나하나 버려나갔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자 서류 한 장,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위축되던 예전의 자신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죽어라고 마음 빼기만 했을 뿐인데, 공황장애가 밤손님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이후 직장생활도 달라졌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넓어지고 편안해졌다. 모임도 주도할 만큼 적극적으로 변한 그는 말한다. “세상은 내 마음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다. 힘들다면 내 마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 애가 ‘과잉행동장애’라구요?(최영미 / 주부)

남편과의 잦은 다툼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던 큰아이는 산만해지고 동생에게 난폭해졌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친구 없어도 괜찮아, 나 싫어해도 괜찮아”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병원에서는 음성 틱 증상이라 했고, 4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상담을 권유했다. 결국 소아정신과에서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에게서 부정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설명에 엄마는 “미안하다, 아들아”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무렵 알게 된 마음수련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했던 잘못과 자기중심적이었던 마음을 돌아보며 버리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며 아이의 감정을 억눌렀던 지난날이 참회로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자 아이의 행동도 달리 보였다. 여름방학에는 청소년 캠프에 보내 마음의 자유를 경험하게 했다.

돌아온 아이는 “뭘 그런 얘기를 하냐고, 다 버렸다”며 엄마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또래들과 어울리며 놀았다. 틱 증상도 거의 사라졌고 반장 선거에도 당선되었다. 집으로 친구를 데려오고, 밴드부에서 기타를 배우며 활기차게 생활했다. 어느 날은 “엄마, 내가 세상을 너무 재미없게 산 거 같아, 이젠 재밌게 살 거야”라며 웃어 보였다.

최영미 씨는 말한다. 부모들은 대개 아이가 변하기만을 바라지만, 사실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부모라는 ‘환경’이다. 영어캠프나 해외연수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일이며, 마음수련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업무효율,집중력

내가 태어난 이유, 진짜 삶의 의미를 깨닫다(윤진영 / 치과의사)

윤진영/치과의사

윤진영 씨의 꿈은 늘 “자유로운 삶”이었다. 치과의사가 되고 학회와 봉사 활동으로 인정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무감은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고, 치대 시절의 치열한 경쟁과 개원 후 커지는 부담감은 쇠사슬처럼 마음을 옥죄었다.

지쳐가던 어느 날 시작한 마음수련은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나”란 좁은 의식 속에서 발버둥 치던 모습을 돌아보며, 자존심·명예·욕심 같은 마음들을 하나씩 버려갔다. 그러자 “나를 짓누르던 쇠사슬이 풀려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진정한 자유란 내가 없을 때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가식이나 분별 없이 환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며 진심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고, 환자들도 입소문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는 진짜 삶의 의미를 아는 데 있다. 남보다 잘나가는 게 행복이 아니라, 지금 옆의 이웃과 따뜻한 밥과 체온을 나누는 것, 그 소소한 행복 속에 진짜 자유가 있다.”


좋은 음악 위해 꼭 해야 할 일, 명상 그리고 마음수련(신지혜 / 오보에 연주자)

마음수련 후기 사진입니다.

신지혜 씨는 독일 유학을 다녀온 오보에 연주자로, 여러 오케스트라와 대학에서 활동 중이다. 지도교수는 그녀를 두고 “음악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늘 평상심을 유지한다”고 평했는데, 그녀는 그 힘이 바로 마음수련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해왔지만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었고, 무대에 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은 적었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았고, 오보에 특성상 마음이 흔들리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다. 대학 2학년 때 시작한 마음수련은 그런 그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한 일주일만 해보자” 했던 수련이 마음을 비우면서 체한 증상도 사라지고, 연주 실력까지 향상되자 계속 이어졌다.

독일 유학 시절 주눅 들고 힘들 때는 파리 수련원이 큰 힘이 되었다. 그곳에서 쌓인 마음을 버리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특히 오보에에 대한 집착을 직면했다. “오보에가 나 자체라서 인정받기 위해 잘해야 하고, 못하면 괴롭다”는 집착이 나를 구속한다는 걸 깨닫고, 몇 날 며칠을 치열하게 버렸다. 그리고 “음악, 명예, 사랑… 다 내려놓았을 때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연주는 완전히 달라졌다. 관객의 평가에 집착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고, 같은 악보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진짜 아무것도 없어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처럼, 잡념이 사라지자 집중력과 표현력이 극대화됐다.

그녀는 말한다. “좋은 음악을 위해서라도 꼭 비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음악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니까요. 저도 마음 없는 진짜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대인관계

처세술 책 백 권보다 나은 대인관계 노하우(장혜정 / 컴퓨터 프로그래머)

“혜정씨는 인기가 많아서 좋겠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 같애.” 언제부턴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전에는 한 번도 상상 못했던 변화였다.

예전의 인간관계는 늘 부담스러운 숙제 같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 맞장구 치고, 생일 챙기고, 상사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익히려 애썼지만, 관계가 더 나아지진 않았다. 오히려 ‘친구라면, 선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내 기준 때문에 상대가 부담스러워했고, 안정된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시작한 마음수련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수련하며 알게 된 건, 내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억지로 요령을 부리며 내 기준대로만 맞추려 했던 것이다. 마음을 비우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고, 6개월쯤 지나자 주위 사람들도 변화된 나를 신뢰하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한다. 인간관계 잘하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고, 내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으면 된다.” 처세술 100권보다 더 강력한 열쇠는 내 입장을 버리고 세상의 입장이 되는 것, 바로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 후 변화된 대인관계 (강윤숙 /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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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숙 교사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무시했고, 교사가 된 후에도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해 동료들과 마찰이 잦았다. 결혼생활 역시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부조리하게만 보였고, 남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듯 답답했다. 결국 그 짜증은 아이들에게 향했고, 큰딸에게서 “엄마, 나에게 소리 지르지 마. 무서워!”라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동료 교사의 권유로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삶과 마음을 깊이 돌아보며 반성했고, 가족·친구·학생들에게 “잘못했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하나씩 버려갔다. 이후로는 사람들과의 부딪침이 줄고, 매일 버림을 실천하면서 삶이 즐겁고 감사해졌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바람’이 줄자, 남편은 “착한 남편”, 시어머니는 헌신적인 분, 아이들은 인생을 함께 즐기라고 하늘이 보낸 ‘동락자’로 보였다.

학교에서도 달라졌다. 예전엔 학년 부장과 자주 부딪쳤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의 팬”이라며 존경과 즐거움을 느낀다. 학생들 또한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왔고, 자신이 변하자 단점만 보이던 교실이 장점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말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원래부터 아름다운 인연이었고, 그걸 알게 해준 건 마음수련이었다.”